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프랑스 문학의 매력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내게는 자유분방함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책 제목과 동일한 문구를 많이 봐서인지 신선함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신선했다. 레몽 장의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 1986년에 출간된, 이미 20년이 넘은 고령의 작품이지만 전혀 세월을 느낄 수 없다. 이것이 프랑스적인 요소라면 너무 멋지다.

주인공 마리 콩스탕스는 서른 네 살의 가정주부다. 그녀 본인이 소개하듯 남편은 있으나 아기는 없고 직업도 없는 여자인 것이다. 실제 월급을 받으며 일하지 않으니 직업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가정주부들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너무 비약했나? 현재는 직업란에 당당히 주부가 있지만 실제로 직업적인 성취감을 느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을 지금이 아니고 훨씬 이전에 읽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부분인데, 심하게 감정이입을 한 것 같다. 어찌되었든 마리 콩스탕스도 뭔가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직업이 있다고 해도 성취감 혹은 자아실현적인 요소가 없다면 만족하기 힘드니까.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은 돈벌이지만, 마리는 자신만의 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 프랑수아즈의 부추김에 솔깃한 것이다.

넌 목소리가 기차게 멋있어. 그런 걸 전혀 써먹지 않고 놀린다는 건 바보짓이야.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대는 건 더 어리석은 일이고. 우리 시대에는 여자도 반드시 뭔가 일을 해야 해……. 우리가 연극학교에 같이 다니던 시절에 넌 진짜로 대단한 재능을 보여줬었거든……. 가령 이 사람 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가서 가정 방문 독서를 해주겠다고 신문에 광고라도 내보지 그래?  (19-20p)

이 엉뚱한 제안을 실제로 실행하면서부터 마리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된다. 그녀의 새로운 직업은 이제까지의 평범한 일상을 뒤엎는다. 그녀가 조언을 구하는 두 남자, 즉 남편과 대학 은사인 롤랑 소라는 현실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돛 구실을 한다. 물론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는 돛이지만. 그녀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되면서 환상 속의 인물로 뒤바뀌는 것 같다. 연극을 하듯이 책 속에 몰입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신문 광고에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이라는 문구를 보고 편지를 보낸 사람들이 그녀의 고객이다. 과연 누가 책 읽어주는 여자를 원할까? 순진한 마리, 그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진작에 광고회사 직원의 말을 들었더라면…….  

책을 읽어주는 여자읽어주는 책을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낯선 그들이 한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소통한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마리 콩스탕스도 자신의 일에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신만의 즐거움을 넘어서 의무적인 일이 되는 순간 변질된다.

정말이지 이건 지나치다. 직업의식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261p)

마지막이 압권이다. 환상 여행을 마치고 현실의 땅을 밟은 느낌이랄까?

마리 콩스탕스 덕분에 흥미진진한 일상 탈출을 한 것 같다. 그녀가 읽어준 책들, 왠지 나도 읽어보고 싶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소리 내어 읽고 싶다. 그녀처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책 읽어주는 여자가 되고 싶다. 너무 소심했나?

환상은 소설로 만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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