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스이카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열 네 살 소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이 결국은 자살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일본에서 팔레트노벨 특별상을 수상하기 전, 선정위원단 사이에서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결말이 죽음이라는 건 비극적이라는 이유였는데 어쩌면 모두가 공감하듯 현실은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우 열 네 살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지 어른들은 알 수가 없다. 정말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본인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일 지도 모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한 학생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살을 선택한 나약함을 탓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무심한 시선들이 그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는 자살이라고 한다. 자살하는 청소년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많다고 하니 심각한 수준이다. 2006년에는 하루 평균 1.8명의 청소년(5~24)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토록 많은 수의 청소년이 자살을 선택했다면 이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꿈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의 주인공 스이카는 평범한 중학생이며, 자신은 절대 따돌림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돌림이 나쁜 줄 알면서도 따돌림 당하는 사람에게 그럴 만한 잘못이 있다고 오해한다.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해도 따돌리며 괴롭힐 자격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하물며 아무런 잘못이 없는 스이카에게 따돌림은 청천벽력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따돌리며 괴롭히는 아이들은 그저 남의 고통을 재미난 게임으로 여긴다. 겨우 열 네 살의 소녀들이 같은 반 친구를 잔인하게 대하는 장면은 너무도 사악해서 슬프기까지 했다. 도대체 순수함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잔인하게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고통 받는 아이들도 모두가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다.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과 같은 현상들은 잘못된 점을 바로잡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특별히 뛰어나지도 재미있지도 않지만 꼭 읽어볼 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스이카처럼 평범하지만 진실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준다. 그 동안 당사자만이 고통 받았던 집단 따돌림의 실체가 모두에게 드러난 것이다.

학생들과 부모님, 선생님은 각자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더 이상 <미안해, 스이카>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스이카를 위해 손을 내민 유리에, 늦었지만 용기를 내준 치카, 그리고 부모님은 모두 스이카를 사랑했고 진심으로 함께 하길 원했다. 스이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해, 스이카>라는 말 한 마디였다.

스이카는 신문 기사에 나오는 자살한 학생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며,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살아서 힘을 내는 거야. 이것이 이 땅의 또 다른 스이카를 살리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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