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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지한 책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분자생물학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생명에 대해 단순한 개념만을 지니고 살다가 오랜만에 지적 엔진이 가동되어 머리가 뜨거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가 현미경 속의 DNA 구조를 설명하듯 연구자들의 삶 또한 자세하고 흥미롭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즉, 생명의 본질을 DNA로 설명하자면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루돌프 쇤하이머의 발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재정의된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DNA 구조가 밝혀지면서 분자생물학 시대가 도래했고 저자 역시 분자생물학자로서 본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는 1962년 말 DNA 나선 구조 규명에 대한 공로로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이들 세 명이 노벨상을 받기 4년 전에 암으로 37세에 생을 마감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요절한 것은 무방비로 X선 노출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과학자들의 삶도 경쟁 사회란 점이 눈에 띈다. 그들에게 2등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로지 1등만이 살아남는다. 1등인 최초의 발견자가 갖는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과학자들에게 노고를 표하고 싶다.
생물의 진화 과정처럼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실험 과정에 대한 속사정을 알게 된 것이 DNA 나선 구조만큼이나 신기하다. 아마도 이런 점이 순수과학 분야의 책이면서 일본에서 50만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자 세 명 모두에게 생명의 비밀을 탐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한 권의 책이 있다. 물리학자인 에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분자생물학에 관한 흥미를 유도한 책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는 생명과학에 대해 대체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과학자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새로운 단백질 채집을 놓고 나비를 채집하는 모습에 비유한 점이 재미있다. 미지의 나비를 찾아 나선 열정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로잘린드 프랭클린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비록 그녀가 발견한 나비의 이름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졌지만 그녀의 업적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생명이란 분자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 속에 삶은 이어진다. 매일이 똑같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생명은 어느 한 순간도 머무르는 법이 없음을 알려준다. 매일이 새롭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생명의 본질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삶은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지 곰곰이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