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다이어리 - 연애보다 재미있는 압구정 이야기
정수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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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마음의 양식이라 한다. <압구정 다이어리>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콜라 같은 탄산음료 같다. 건강을 위해 챙겨 먹을 필요는 없지만 입에서 자꾸 땡 기는 달콤하고 톡 쏘는 매력이라고나 할까?

압구정과 청담동을 우리 동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가볍고 유쾌하며 발칙하기까지 하다. 주인공 지현은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콧대 높은 부잣집 막내딸을 연상시킨다. 지현의 친구인 지안과 유라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미모와 재력을 갖춘 세 명의 여자가 함께 있다고 상상하니 압구정스럽다.라는 표현을 알 것 같다.

압구정과 청담동 이외의 지역은 그저 별 볼 일 없게 생각하는 잘난 그녀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한편으론 이질적인 거부감이 밀려온다. 콜라를 상쾌하게 마신 뒤 끄윽 올라오는 기분 나쁜 트림처럼.

나는 압구정을 가 본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해서 그 근처에서 놀아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이야기가 죄다 낯설다. 50만 원짜리 화장품은 일상용품이고, 몇 백 만 원짜리 명품 가방은 기분전환용이라니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상위 몇 프로에 속하는 부자들의 삶을 평범한 소시민이 알 턱이 있겠는가. 근데 압구정 토박이들은 원래 부자들만 사는 걸까?

드라마를 보는 심정으로 그녀들을 봤다. 구질구질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보다는 화려하고 부유한 그들의 모습이 보기에는 좋으니까. 그녀들의 관심은 잘난 남자다. 능력과 외모, 집안까지 완벽한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은 그녀들이다 보니 그에 걸맞게 꾸미는 건 기본이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손톱까지 완전 연예인이 따로 없다.

청소만 하다가 갑자기(성형외과의사 같은 요술 할머니 덕분에, 순전히 예쁜 외모 덕으로)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원래 우아한 공주(부모님이 왕과 왕비인, 재력을 갖춘 집안)가 왕자를 찾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득 인어 공주가 생각난다. 왕자를 살려준 것은 인어 공주지만 다리가 물고기(신분 차이)라는 크나큰 결점을 지닌 탓에 목소리(자금 압박)를 주고 늘씬한 다리(완벽한 성형)를 얻지만 왕자의 사랑을 얻지는 못한다. ? 왕자는 이미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이웃 나라 공주와 사귀고 있었으니까. 왕자는 인어 공주를 귀여운 여동생으로 여겼다. 세상에나, 생판 남인데 여동생 취급을 하다니. 그건 여자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단 의미겠지. 아무튼 압구정스러운 지현과 친구들은 자칭 완벽한 이웃 나라 공주들인 것이다.

왠지 작가 정수현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단순히 서울 태생으로만 나와 있는데 그녀야말로 압구정 출신이라 이야기가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주인공 이름도 한 글자만 바꿔서 정지현으로 짓고 말이지. 웬만하게 외모에 자신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작가 사진이 기재되질 않는데 긴 생머리에 뽀얗고 예쁜 얼굴이 책 띠지 와 작가 소개란에 당당히 실려 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녀 자신이 참 압구정스럽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상세한 지도가 있는 걸 보니 책의 집필을 위해 압구정과 청담동을 친숙하게 다녔겠구나 라는 짐작은 된다. 작가의 말에 적힌 감사한 분들도 그렇고 그 글을 적은 곳이 압구정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이니 당연한 짐작이다.

<압구정 다이어리>는 생각이 필요 없는 책이다. 그냥 압구정에 사는 여자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압구정에 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재미난 동네 이야기다. 재미있게 잘 봤다. 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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