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남자 2
이림 글.그림 / 가치창조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기다렸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사람을 애태우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이야기가 <죽는 남자>라니!

인생 뭐 있어?라며 대충 젊음을 소비하며 살던 남자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번뜩 정신을 차린 남자는 자신의 남은 생을 확인한다. 죽기 전, 아니 살 날은 100일이다.

1권에서는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내용이었고 2권은 그의 계획대로 사람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모른다. 변화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100일이라는 시간은 참 묘한 시간이다. 길다고 하기엔 짧고, 짧다고 하기에는 긴 것 같은 시간이다. 죽는 남자 서영이 할 수 있는 일은 100일이라는 시간 내에서만 가능하다.

흔히 영화처럼 이 모든 상황이 꿈이거나, 의사의 오진이라면 좋을 텐데, 과연 서영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괜히 보고 있는 내가 더 조바심이 난다. 정말 곧 죽을 사람이 저렇게 한가해도 되는 건가?

서영이란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사랑하는 여자 친구 다희 이외에는 친구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서 모질게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 정말 사랑일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나쁜 남자로 기억되는 것이 정말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나는 유행가 가사 같은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이 싫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고 살아 있는 순간을 함께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이 죽은 뒤에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새 남자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원래 그다지 착하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죽게 됐다고 착한 남자를 흉내 내려는 그가 맘에 안 든다.

죽음은 지금의 모든 것을 떠난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오직 나 홀로 떠나는 낯선 여행이다. 현재 살아 숨쉬는 사람이, 전혀 경험한 바 없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 지 못하는데 무엇을 준비하겠는가?

그렇다. 이 남자의 계획도 죽기 전까지, 살아 있는 순간뿐이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 하고 싶은 것이다. 왜 진작에 깨닫지 못했을까?

사는 것이 이렇게 치열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데 내 머리 속에는 온갖 질문들이 튀어 나온다. 그만큼 죽음이란 소재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죽는 남자>는 몇 권까지 나올까?

하루가 한 권의 책 같을 때도 있고 겨우 한 칸의 그림 같을 때도 있다. 어쩌면 죽는 남자가 살고 있는 100일은 하루가 한 권의 책 같을 것 같다.

나에게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

이 책이 주는 교훈은 확실하다. 근엄하게 충고하는 대신 까칠한 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느끼게 한다. 마치 <인간 극장- 죽는 남자 편>을 본 것 같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         소포클레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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