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시인 신달자가 아닌 인간 신달자를 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겨우 서른 다섯 나이에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녀에겐 세 아이와 여든 넘은 노모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지만 달리 무슨 선택이 있었겠는가? 남편을 기어코 살려낸 것은 선택이 아니라 모진 운명이라고 할 밖에.

환자인 남편을 24, 시어머니를 9년 간 뒷바라지한다는 것이 단 몇 줄로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시련이다.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아내, 엄마의 모습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것 같다. 그저 절망스런 삶에서 겨우 한 가닥 희망을 부여잡은 듯 위태로운 나날이었다. 결혼한 순간부터 그녀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피할 틈도 주지 않고 폭우를 쏟아냈다.

몰랐다. 유명 작가로만 알았지, 그 속내에 이토록 큰 고통과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말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초라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 대해 처음에는 동정하고 위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심해지는 것 같다. 오랜 병에 효자 없고 열녀 없는 것이다. 자그마치 24년이다. 그녀의 노력이 대단하다. 자신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이라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가 겪은 시련들은 실로 가혹한 운명이었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원망하며 따지면서도 그 끈을 놓지는 않았다. 믿음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원래 종교적인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왜 아니겠는가?

환자를 보살피다 보면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다. 어떤 것이든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마지막 의지할 곳은 하느님이 된 것이다.

한창 젊고 활기찬 시기에 가족을 부양할 의무와 책임뿐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래도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였으니까 견뎌낸 것이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

그녀가 배운 생의 걸음마는 무엇일까?

인생을 제대로 걷고 싶다면 걸음마하는 동안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 내게 왜 이런 고통이 주어졌냐고 원망해도 소용없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님의 절규처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고통은 평생 짊어지고 갈 짐인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하던 남편이 임종하는 순간에 그녀는 깨달았다. 그가 그녀 삶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고통을 단순히 불행과 연결 짓지만 고통 없는 삶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한 때 사랑하여 결혼한 그 남자는 그녀에게 삶의 고통만을 주었지만 그가 떠나간 자리는 허망함이 자리한 것이다.

아직은 모를 일이다. 인생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딛는 아이의 심정으로 우리는 기우뚱거리며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녀가 숨기고 싶었던 삶의 치열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내 마음을 울렸다.

그녀가 마흔에 배웠던 생의 걸음마를 나는 감히 알 수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인생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부디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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