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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미래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SF영화 <이퀼리브리엄>이 떠오른다. 인간의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조절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 미래의 모습이다. 모든 사람은 약물을 통해 감정이 억제된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독재자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금지시킨다. 책과 음악, 예술 등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자는 무조건 처형된다.
평화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인간은 기계화된다. 격렬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정해진 일을 하고 독재자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만이 살아남는다.
호시 신이치가 보여주는 미래 역시 다르지 않다.
<진보>는 편리해진 미래 사회가 나온다. 힘든 일은 로봇이 대신해준다. 다만 그 로봇을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고치는 수고로움이 있다. 어찌 보면 미래 사회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조금 더 편리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른 불편도 감수해야 된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을 위한 진보인지 헷갈린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진다.
호시 신이치 자신은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길 원한다고 하지만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는 경각심이 생긴다. 마치 달착지근한 캡슐에 담긴 쓰디쓴 약을 먹는 느낌이다. 그냥 꿀꺽 삼켜버리면 달게 느낄 뿐이지만 잠시 그 맛을 음미하면, 어느새 본래의 쓴 맛이 느껴진다. 약의 목적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치료해야 될 병은 무엇일까?
짧은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삐딱한 우리의 한 부분 같다.
속고 속이는 비열함은 기발한 반전을 통해 등장하고 엉뚱하고 황당한 일들은 현실의 부조리와 닮아 있다.
<유행병>과 <번호를 불러주세요>는 편리해진 세상이 때론 굉장히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을 만든다. 인간의 욕망은 편리함을 위주로 기계화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마저 기계화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사랑의 작용>은 오히려 로봇이 더 인간적으로 표현된다.
‘인간답다.’는 표현을 정작 인간에게 사용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왜 일까?
지구를 한 순간에 초토화시키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서로를 향해 위협하는 현실은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A물고기가 B물고기를 죽이기 위해 몰래 물에다 독약을 뿌린다면 분명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있다.
<파멸의 순간>은 호시 신이치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상상한 미래를 보면서 조금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아닐까 싶다.
막연히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기 보다는 파멸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꼭 비극은 아닐 것이다. 실제 파멸을 예방하는 길일 수도 있다.
호시 신이치가 만든 미래는 <한 줌의 미래>다. 한 줌의 모래는 꽉 움켜 잡으면 남는 것이 없다. 그냥 살짝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좋은 단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