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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커 1 - 별을 쫓는 아이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성장 소설 속에는 아픔이 늘 존재한다. 세상의 슬픔이나 괴로움과 무관한 어린 시절은 짧게 지나간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는지도 모른다. 한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지닌 나이테만큼 사람도 성장을 위한 나름의 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열 네 살의 소년 루크는 2년 전, 아버지를 잃고 나서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사춘기를 겪을 시기에 예기치 않은 슬픔을 경험하다 보니 더욱 마음을 잡지 못한다. 루크의 아버지는 피아니스트였다. 루크 역시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음악적 재능이 탁월하다. 그런데 지금은 피아노 연습도 심드렁하다. 어쩌다가 방황하는 사이에 불량한 스킨 패거리와 어울리게 된다. 사실 어울린다기 보다는 스킨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졸개가 된 꼴이다. 싫지만 방법이 없다.
어느 날 스킨 패거리는 혼자 사는 리틀 부인의 집에 침입하여 상자 훔치는 일을 루크에게 시킨다. 한 때는 착하고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던 아이가 지금은 몹쓸 불량 소년이 된 것이다. 어른들 입장에서 방황하는 아이는 반항하는 아이로 여겨진다. 방황과 반항은 결국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성장의 과정일 수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루크는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 루크에게 너무나 소중한 엄마는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루크는 아직도 떠난 아빠를 잊을 수가 없는데 엄마는 어느새 새 사랑을 만나고 있으니 루크의 마음은 괴롭기만 하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특별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루크는 자신을 포기한 채 살고 있다. 자신을 위협하는 스킨 패거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고급 주택 그랜지에 혼자 살고 있는 리틀 부인은 사람들과의 왕래를 끊고 사는 할머니다. 나름의 아픔을 감춘 채 살아가는 리틀 부인과 미지의 소녀 나탈리가 루크와 만나면서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난다. 외롭고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음악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뿐 아니라 내적인 아픔을 극복해내는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방황하는 루크, 외로운 리틀 부인, 상처 받은 나탈리는 우리 내면의 아픔을 대변한다. 별은 쫓는 아이, 스타시커는 삭막한 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손길이며 어둔 밤 하늘을 비쳐주는 희망의 빛이다.
루크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 느낌은 전해져 오는 듯 하다.
글룩이 작곡한 ‘정령들의 춤’, 드뷔시의 ‘춤추는 눈송이’, 슈만의 <어린이 세계>, 그 밖에 쇼팽, 슈베르트, 바흐, 하이든 등등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음악적인 감동은 존재한다.
루크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감동할 수 있는 것은 연주 능력이 뛰어나서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픔을 위로해 주는 사람 역시 아픔을 겪어봤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가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픔을 나누고 이겨내는 과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