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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김중혁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8편의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직업의 주인공들이 나온다. 피아니스트,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 클럽 디제이, 악기점 직원, 취업 준비생, 음반매장 직원과 기타리스트, 잡지사 직원, 공연기획자 등이다. 그들을 특징짓는 직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면, 섬세한 내면을 가진 한 남자가 남는다. 마치 다양한 악기들이 하나의 음악에 맞춰 연주하듯 편안한 느낌이다.
인생이라는 하나의 음악을 각자 자신의 역할대로 연주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엇박자 D>는 꽤 인상적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음악과 관련 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엇박자는 박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엇박자라서 음치니까, 음악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과감히 깬 엇박자 D의 용기와 열정이 놀랍다.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은 엇박자 일지라도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유리방패>에 나오는 ‘나’와 M은 그들답게 살려고 노력한다. 한때는 실패에 중독된 그들이 이제는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주는 유리방패, 아니 플라스틱방패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유리방패로 상징되는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실패중독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조차도 즐기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니란 것이다.
<매뉴얼 제너레이션>은 제품마다 알맞은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이 나온다. 매뉴얼을 잘 몰라 제대로 사용 못하는 제품이 있듯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만의 매뉴얼을 찾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방향 버스>는 뭘까? 버스 종점에 앉아 매일 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걸 보다가 버스를 마치 사람이라고 착각한 걸까?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마치 정해진 노선을 달리는 버스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향이 없다는 것은 자유로움일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방황일까? 그 무엇이든 답답한 현실을 가끔은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고 나니 시타르의 현 하나를 조용히 뜯는 소리가 듣고 싶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그냥 악기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자동피아노>의 피아니스트가 생각하는 음악과 <비닐광시대>에서 나오는 디제이가 생각하는 음악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세상은 <비닐광시대>에 나오는 그 남자처럼 자기 방식으로 음악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나와 B>에서 갑자기 생긴 햇빛 알레르기는 폭력적인 세상을 향한 내면의 도전, 대항이 아닐까?
신선하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두서없이 느낌을 표현한 것 같다. 8편의 이야기가 다르면서도 닮았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면서도 함께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을 처음 만났는데 다시 또 만나고 싶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