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생태도감 -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4가지 파국
이노우에 히로노부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의사의 숨기고 싶은 진실을 파헤친 4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직업적으로 존경 받는 의사의 겉모습과는 달리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왜 하필 의사를 소재로 했을까? 그것은 작가가 손해보험조사원으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병원과 의사, 환자 간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너무나 잘 아니까 잘못된 부분을 꼬집고 싶었던 것 같다. 표지에 작은 글씨로 적힌 소제목은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4가지 파국>이다. 그러니까 본분에 충실한 의사들과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의사의 본분은 뭘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떠오른다. 거창하게 인류 봉사까지는 아니라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아프기 때문에 한 번쯤 환자 입장이 된 적이 있을 것이다. 병원과 의사 앞에 환자는 약자가 된다.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비양심적인 의사를 만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의사들은 불량 의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입학>에서는 의학적인 열정은커녕 재능도 없는 아들을 의대에 보내려는 아버지가 나온다. 아버지는 종합병원의 부원장이다. 그의 목적은 아들이 의사 자격증만 따면 병원을 물려주는 것이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의사 자격증을 딴다는 것은 사회 악이다. 그런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자기 집안의 이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가린다. 부정입학의 문제점은 불량 의사를 만든다는 점이다. 비양심적인 의사가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 결말이 흥미로운 이야기다.

<경부염좌>는 돈에 눈 먼 의사가 나온다. 교통사고 환자들을 이용해서 보험금을 부풀리고 이득을 보는 병원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섭식장애>는 아름다운 여성 환자와 정신과 의사 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사의 열정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인간적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를 인간적으로 바라보면 너무 감정에 치우쳐 치료가 힘들고 질병으로만 바라보면 비인간적인 면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치료 결과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료과실>은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일 것이다. 의사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사의 의료과실이 처벌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의사로서 과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명예, 자존심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숨기려 하고,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의 양심만을 믿고 치료를 맡긴 환자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상반되는 훌륭한 의사도 나온다. 환자 치료를 위해 성실하고 양심적인 의사라면   사생활은 알 필요도 없고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의사의 사생활로 인해 환자 치료에 악영향을 줬다면 밝혀서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의사도 인간인데 너무 잘못만을 꼬집어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의사이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흰 가운을 입는 순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의사다.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의사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존경과 대우를 받는 것이다. 철저하게 감춰지고 보호받는 의사들의 성벽이 조금은 무너진 것 같다.

이 책은 잘못을 드러내고 흉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졌다고 믿는다. 밝고 건강한 사회는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몫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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