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한 일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
호시 신이치 지음 / 지식여행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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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시 신이치의 작품 맺음말은 이렇다.

읽어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재미있다고 느꼈습니까?

그렇다. 그의 초 단편 소설은 재미있다. 시리즈 중 열두 번째 작품인 <의뢰한 일>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한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자신의 현실이 모조리 만들어진 허구라는 점이다. 분명 나란 사람은 존재하는데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우>는 사형제도가 폐지된 후 살인자에게 가해지는 극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처벌은 뭘까? 보통의 감옥은 좁은 공간에 가두고 모든 행동을 제한하는 등의 신체적인 처벌을 한다. 갇힌 죄수들은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으로 감옥에 있다 보면 견딜 수 없는 상황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풀게 된다. 다루기 힘든 죄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사형제도를 폐지했다면 범죄에 대한 처벌을 위해 다른 방법을 고안해낼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길만한 강력한 처벌이 뭘까?

이야기는 늘 반전이 있다.

가끔은 흥미 위주의 괴담도 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려서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전화선이 끊겨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괴담조차도 귀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으면 전혀 무서울 이유가 없다. 귀신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귀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귀신에 대해 학습하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은 생겨난다. 굳이 믿는 것도 아니면서 무서워하는 모순된 모습이 인간이다.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자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조차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흔히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들, 일정한 법과 규칙들은 보이지 않게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오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이며 사랑스런 아내와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친한 친구와 친절한 이웃이 있어서 언제든 그를 도와준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 두려움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마을을 벗어나 멀리 여행을 가려고 맘먹은 뒤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내도 이웃도, 하물며 가장 친한 어릴 적 친구도 거짓된 관계임을 알게 된다. 주인공 트루먼은 아기 때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였다. 일반 배우와는 달리 그는 자신이 드라마 주인공이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이고 솔직한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드라마로 보여진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결국 트루먼은 거짓된 세계에서 탈출한다. 그가 탈출하는 문을 보면 가짜 하늘과 이어져 파란 칠이 된 작은 문이다. 한 인간을 거대한 동물원 우리에 가둬 사육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거대한 동물원은 아닐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외계인 시청자들.

수많은 동물들 중 유독 탐욕스런 동물, 인간이 지구를 차지하여 끊임없이 다투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적이라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을 뒤집어 보고 비틀어 보는 것이 호시 신이치다. 어느새 나도 익숙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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