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묵직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여기서 묵직한 느낌은 지루해서가 아니라 주제의 깊이 때문이다.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통해 윤리 수업을 받은 것 같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인물의 심리, 배경 묘사가 매우 치밀해서 저절로 영상이 펼쳐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이 이야기는 살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백과사전 외판원 일을 하는 선량한 청년 렘 엘틱이 주인공이다. 평소와 다름 없이 책을 팔기 위해 방문했던 집에서 살인 장면을 목격한다. 피해자들은 그에게서 책을 사기로 했고 수표만 받아 나갔으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살인 현장의 목격자가 된 것이다. 그가 겪은 충격적이고 당황스런 일들이 내게도 혼란을 준다. 이건 추리 소설에서 범인을 찾는 재미는 없다. 이미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가 곁에 있으니 말이다. 대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는 결말이 주는 안도감은커녕 온갖 윤리적 질문들로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된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 누가 악한 사람들을 심판할 것인가? 생명의 존엄성에도 차등이 있을 수 있는가? 선한 목적이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도덕적 암살자는 말한다.
“……나도 평화주의자들의 원칙을 존중해. …… 하지만 누군가 칼을 들어야 한다면 내가 들 거야. 그렇다고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야. 난 그저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행동반경의 밖에 있다는 것뿐이지. 남북전쟁 때 남부군에서 싸운 위대한 영웅들을 봐……”
(본문 468p)
살인 자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인데 암살자의 말에 반박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그를 비난하려면 이제까지 훌륭한 위인이라고 칭송하던 전쟁 영웅들은 전부 위선이며 모순이 된다. 이것이 바로 ‘찢어진 진실’이 아닐까? 굳이 그를 비난하자면 아무도 그에게 악인을 심판하라는 권한을 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진실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암살자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나 자신은 얼마만큼 선량한 사람인가?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내가 렘 엘틱이 된다고 해도 그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이없게 범죄 사건에 휘말린다면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량한 시민의 입장보다는 범죄자의 입장과 더 가까워진다. 범죄자도 한 때는 선량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변명일까?
참 알쏭달쏭 묘한 추리 소설이다. 이토록 교훈적일 수 있을까 싶다. 그것도 암살자가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모순된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찾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암살자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고귀한 사명을 수행 중이었으니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보면 극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이 있다. 과연 무엇으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궁극적으로 바른 세상을 위한 것인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동물 학대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주제를 던진다.
동물보다 인간이 더 우월한지, 그것을 이유로 잔혹하게 죽여도 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 하지만 육식을 포기하라면 자신이 없다.
<도덕적 암살자>는 이야기가 어렵다거나 지루하지는 않으나 너무나 심오한 질문들을 던져 당황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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