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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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설헌 초희는 누구인가?

허균의 누이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역사는 많은 것을 묻어버렸다.

? 단지 허초희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강한 자들의 전유물인지도 모른다. 시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여인네의 삶은 한낱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다. 다행히 허난설헌의 작품이 허균에 의해 남겨졌기에 우리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기억할 수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다. 여자이기에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 시인 허초희, 비록 소설이지만 그녀를 만났다는 점이 기뻤다. 치열하게 자신을 놓지 않고 비뚤어진 세상과 맞선 그녀야말로 영웅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풍유나 즐기던 양반들의 전유물인 시가 그녀를 통해 민중의 외침이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이 그녀의 시를 통해 찬란히 빛을 발했다.

역사는 순종하며 내조한 신사임당만을 칭송할 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외면했다. 역사적인 기록마저 거의 없는 것도 그녀의 존재를 애써 무시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또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가위>도 작가의 짐작대로 그녀가 썼을 리 없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음탕한 문장으로 여겨질 만한 시로서 그녀를 모함할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囊中之錐(낭중지추)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녀의 미모와 재능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것 같다. 그것이 불행이

된 것은 시대적 비극이다. 여인의 삶을 정해진 틀에 맞추기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자유롭기란 어려운 일이다.

시는 그녀에게 있어 삶의 힘이며 자유에 대한 갈망이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신사임당과 비교하여 폄하된 것도 그녀의 불행을 그녀의 탓으로 돌린 당대의 편협한 평가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 생각된다. 여성으로서의 천대는 참는다 해도 끓어오르는 예술 혼을 억누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이 시를 쓴다는 것이 죄악시 되는 사회에서 시를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스물 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안타깝고 서글프다. () 많은 그녀의 삶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시를 쓰는 일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앗아간 세상은 어쩌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선계(仙界)를 노래했다. 시대를 꿰뚫는 현안을 지녔으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없는 선계는 우리에게도 이상향일 것이다. 정말 그녀가 신선이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허난설헌은 위대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그저 비극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비극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비록 세상은 그녀를 외면했어도 그녀의 시에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가 주는 감동은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를 노래하는 마음은 진실되며 아름답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시인이여, 영원히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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