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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을 닮은 방 1 - 세미콜론 그림소설 ㅣ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김한민 지음 / 세미콜론 / 2008년 1월
평점 :
세미콜론 그림소설이라니!
장르부터 수상쩍다. 만화처럼 칸칸이 그려진 정형화된 틀도 아니기에 그림이란 표현이 맞긴 하다. 단순히 글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그림으로 이해를 돕고 있으나 상상력 부족한 사람들에겐 그림도 해석을 요한다. 알쏭달쏭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주인공은 ‘무이’지만 그 보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누나’다.
‘누나’씨는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평범한 여자다. 그녀가 면접을 본 곳은 VCA (Video College Audio)다. 엉겁결에 채용되어 인턴 교육을 받는다. 그녀의 임무는 ‘무이’를 따라다니며 그의 생각을 몰래 듣고 녹음하는 일이다. 이 일이 왜 중요한 거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무이’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수 밖에 없다. 참,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어, 이건 무슨 얘길까? 계속 어리둥절한 나는 ‘누나’씨와 같은 심정이다. 일은 하고 있지만 그 일을 왜 하는지를 모르듯이 책을 읽으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차근차근 정리해보면 이렇다.
‘무이’라는 주인공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누나’씨가 고용된 것이다. 이건 내 맘대로의 추측이다. VCA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니까. 에코 도서관의 존속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VCA 연구소 교수진들은 뭔가 숨기면서 자세한 설명을 피한다.
‘무이’의 직업은 낮에는 책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매일 새벽 네 시에서 네 시 반 사이는 숙제를 한다. 숙제란 칼럼니스트 어머니를 대신해서 상담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를 쓰기 위해 에코 도서관에 가서 사연을 보낸 의뢰인들의 에코북을 열람한다. 에코북이란 사람마다 하나씩 있어서 각자의 생각과 기억을 저장한 책이다. ‘무이’는 바로 사람들마다 겪고 있는 아픔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알맞은 위로의 목소리를 찾는 일을 한다.
이 중요한 일을 하는 공간이 ‘혜성을 닮은 방’이다. 혜성처럼 날아다니는 작은 방 속에서 편지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 외의 등장 인물로는 에코 도서관 사서 ‘찬찬’과 터미널 노숙자 ‘엔케’ 아저씨, ‘무이’와 같은 건물에 사는 자동차 정비사 ‘모기’, 심리학과 대학원생 ‘삼보’ 등이다.
뭔가 색다른 상상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버거워하는 걸 보면 나의 상상력도 많이 고갈된 모양이다. 어쩌면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상상력 고갈, 감정 건조 증세를 겪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 상상력이 소각 위성에서 꿀떡소각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모든 내용을 순전히 글로 이야기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얼만큼 이해했을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복잡하던 내용이 아기자기한 그림과 글을 계속 보다 보니 은근히 끌리는 재미가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무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책을 보든 마지막 장에 쓰여진 ‘2권에 계속’처럼 야속한 글이 또 있을까. 아직 다음 이야기는 기다려야 하는데.
이 참에 부록으로 에코북- ‘무이’의 목소리가 담긴 CD가 함께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분하고 맑게 울리는 목소리를 가졌을 것 같은 ‘무이’,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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