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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 정약용 시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0
정약용 지음, 최지녀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우리의 고전 중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도 대중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고전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외면한다면 잿더미 속으로 사라진 숭례문처럼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외면하는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어떻게 고전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이 총서는 그러한 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을 현대화하여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다산 정약용의 시들 중 그의 다양한 사상을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실려 있다. 다산이 쓴 시는 문집이 잘 정리되어 시기별 작품의 분량이 꽤 많은 편이라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가려 뽑은 시 선집이다.
번역된 시를 음미하다 보면 이 시가 200여 년 전에 쓰여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공감이 느껴진다.
4
부귀는 참으로 한낱 꿈이요
불행 또한 한낱 꿈이니
꿈 깨면 그 뿐이지
온 우주가 한갓 농담인 것을.
富 貴 固 一 夢 , 窮 阨 亦 一 夢 , 夢 覺 斯 己 矣 , 六 合 都 一 弄 .
5
세상 걱정 하나하나 따져 보면
처자식 걱정이 그 중 제일.
누가 알겠나 집 나온 사람이
이렇게 호탕하게 놀고 있는 걸.
10
아기가 까닭 없이 울기도 하고
까닭 없이 방긋 웃기도 하듯이
기쁨과 슬픔은 본래 까닭 없는 것
나이가 많을 뿐 어른도 마찬가지.
11
뜻을 펴지 못하면 애석해들 하지만
등용된 후에는 험담만 무성하지.
그래서 소부(巢父) 허유(許由) 무리는
고개 내젓고 한가히 지냈다네.
12
백성들이 굶어도 날 원망 않을테고
백성들이 아둔해도 난 모를레라.
훗날 나를 두고 말하겠지
뜻을 이뤘으면 큰일을 했을 거라고.
이 시는 1801년 ‘책롱(冊籠) 사건’이 발단이 되어 장기로 유배된 후 1804년에 쓴 것이라 한다. 시제는 [노래로 근심을 푸노라]로 절망과 비탄 속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다산의 모습이 열두 편으로 된 짧은 시에 담겨 있다.
그는 18년간의 유배 생활로 처자식과 생이별을 했다고 하니 인간적으로 불행한 삶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시를 읽다 보면 삶을 즐기는 여유가 느껴졌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어려움을 겪다보면 좌절할 때가 많다. 삶의 어둔 면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삶의 기쁨, 행복은 멀리 달아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자신과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
다산의 시는 세상을 노래하는 심정으로 살아?? 보며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꼈다. 힘들고 괴롭워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다산은 큰 뜻을 세상에 펼칠 수는 없었지만 오랜 유배 생활에 절망하지 않고 위대한 저작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들을 통해 다산의 생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먼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대를 사는 이웃의 목소리를 들은 듯 친밀하게 느껴졌다.
한시를 번역하고 간단한 해설을 담은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회고와 함께 아름다운 우리 문학을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게 해주었다.
또한 한시의 매력을 발견했다. 한 줄의 한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말로 펼쳐놓은 것과는 다른 응축된 느낌을 받았다. 짧지만 깊은 한시를 음미하는 것도 시 선집을 읽는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