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즐겨 하던 공상이 있었다. 내가 눈을 감고 신호를 보내면 현실과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타임머신처럼 말이다. 그 때는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거나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으면 했다.

마치 행복은 산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런 공상을 접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산다고 해서 더 행복하진 않을 테니까. 결국 세상이 바뀌고 모습이 바뀐다 해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 없다. 살다 보니 내 자신과 정이 들어서 이젠 다른 삶을 살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다.

만약 타임슬립의 주인공이 된다면 거부할 수도 없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책은 공상으로만 가능했던 시간 여행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바뀐다면 어떤 기분일까?

시간 여행이란 점을 제외하면 <왕자와 거지>를 떠올리게 된다. 2001년 9월 11 열아홉 살 오지마 겐타는 서핑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1944년 9월 12이다. 그는 가즈미가우라 해군항공대 비행연습생 이시바 고이치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고이치는 첫 단독 비행 중 실종되었고 숨어있던 겐타는 탈영병으로 붙잡힌다. 거지가 된 왕자처럼 고된 군생활이 시작된다. 한편 실종된 고이치는 2001년 겐타의 역할을 맡게 된다.

왜 하필 2001년 9월 11이었을까?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 공격을 받았다.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여 자살 테러를 했으니 인명 피해는 엄청났으며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21세기 전쟁으로 불릴 만큼 심각했다.

바로 그 날, 타임슬립이 발생했다. 21세기를 사는 청년이 뜬금없이 전쟁 중인 1944년에 뚝 떨어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재미를 좇으며 살던 철없는 열아홉 살이 아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미국이 평화로운 21세기에 겪은 테러의 충격은 개인적으로 겐타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가벼운 공상 소설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설정만으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두 명의 주인공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경험함으로써 우리에게 말해준다.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 또한 전쟁의 허무함을 알려준다. 전쟁의 진정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가미가제와 같은 전술은 비극 그 자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태도는 광기에 가까웠다. 자폭하며 죽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던 그들 땅에 원폭 투하가 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와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

한 사람이 수천 명의 적을 물리친다면 그만큼 조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가모시다

하지만 적에게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겐타

전쟁은 적도 우리처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란 사실을 잊게 한다. 그걸 기억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리가 없겠지만. 결국 전쟁과 테러와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은 인간애다. 인간에 대한 사랑,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겐타와 고이치는 공교롭게도 미나미라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외모 뿐 아니라 성격, 기호까지 닮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두 주인공의 여정은 다음 해 8 16일까지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결말이 궁금했다. 언제쯤 우리의 겐토(왠지 고이치보다 정이 간다)가 원래 대로 돌아올 지 말이다. 마지막까지 긴장했다.

이 책은 두 권의 책이 하나의 비닐 커버로 쌓여 있다. 표지에 앞 권은 1/2, 뒤 권은 2/2 이라고 쓰여 있다.

끝까지 읽고 나니 그 의미를 알겠다. 결말에 대한 힌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의 즐거움은 결말이 아닌 여정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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