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우연
브라이언 워싱턴 지음, 최현영 옮김 / 더픽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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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때로는 쓸데없어 보이는 대화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기도 해요.

좋은 쪽으로든, 혹은 나쁜 쪽으로든 말이죠. 인간 관계에서 최악의 침묵은 단절, 잠시 피하려다가 아예 끊어지는 거죠. 관계를 정리하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대화가 필요해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다 알 거라는 착각이 오해를 불러오고,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요.

브라이언 워싱턴 작가의 장편소설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의 원제는 "Palaver"라고 하네요.

포르투갈어로 '단어, 말'을 뜻하는 palavra 에서 유래한 말로, 18세기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무역상들이 현지 원주민들과 말싸움을 벌일 때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를 지켜본 영국 선원들이 영어로 흡수하면서 '협상', '장황하고 쓸데없는 말'이라는 속어로 정착했다고 하네요. 저자는 이 소설이 실화는 아니지만 실제로 자신을 일원으로 품어준 도쿄의 퀴어 공동체들에 생명의 빚을 졌기에, 자신이 엮어 내는 서사가 그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소설은 휴스턴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자그마치 열아홉 시간의 비행을 거쳐 아들이 살고 있는 도쿄에 도착했으나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으로 시작하네요. 그녀가 직장에 12일간 휴가를 내고 여기까지 온 이유는 전화 한 통 때문이네요. 아들이 도쿄에서 십여 년 넘게 사는 동안 한 번도 왕래를 안 할 정도로 소원해진 모자 관계지만 가끔 전화로 안부를 챙겨 왔는데, 지난주에 온 아들의 전화는 뭔가 달랐어요. 아들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고 했지만 엄마의 촉은 경고 신호를 울린 거죠. 반면 아들은 무작정 찾아온 어머니가 불편하고 귀찮을 따름이네요. 툴툴대는 아들과 겉도는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는, 불쑥 악어와 벌새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악어를 사랑하게 된 벌새가 자기 목숨이 끝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악어의 입술에 앉았고, 악어 역시 벌새를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상황이 변할 수도 있지만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간다고. 그러면서 자신과 아들은 각각 악어인 동시에 새라고 이야기하네요.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어머니는 아들과의 어긋난 관계를 풀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있네요.

어머니는 아들이 의지해 온 사람들의 공간과 삶을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아들을 알게 되고,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어머니와 아들이 각자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상처를 마주하며 점차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뭉클하네요. 끝까지 두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저 '어머니'와 '아들'로만 표현한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성에 몰입하게 되는 요소였네요. 어머니는 아들이 건네는 모진 말에도 꿋꿋하게 진심을 전하고 있어요.

"···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난 이 모든 것과 함께 널 여기 두고 떠나는 게 맞겠어. 왜냐하면, 이곳은 아름다우니까. 내 눈에도 아름다움이 보이는구나. 내가 너에게 줄 수 없었던 거고, 내가 주려고 한 건 네가 원치 않으니까.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인생이야." (328p)

악다구니를 쓰는 아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네요. 그 다음 장면은··· 가슴이 철렁했네요.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모르게 작은 퀴어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과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네요. 퀴어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진정한 가족과 집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네요.


"우리 얘기 좀 해요." 아들이 말했다.

"그럼, 여기 좀 앉아 봐."

"일하러 갈 준비 해야 해요."

"아주 잠깐도 안 되니?"

"들어 보세요, 난 아직도 엄마가 왜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았잖아. 며칠 전에 말이다. 그래서 걱정했지."

아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조리대에 몸을 기대고 서서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뭐라고?"

"내가 그 망할 전화를 안 받았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여기에 왔다고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그 정도도 못할 줄 알았니?"

"세상에. 말도 안 돼요."

솔직히 말하면, 아들의 반응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아들이 외국으로 떠났을 때 그녀는 아들에게 그가 사는 집 사진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급한 대로 사진 세 장을 보내주었지만,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혹은 아들에게 친구들이 있는지.

또 아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윤곽에 대해서도.

그 사진 세 장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들은 지난 칠 년 동안,

그 사진 속에서만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쉬웠다.

아들은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먼 일본에.

그녀가 휴스턴의 습기 속에서 헉헉대면서 일본에 내리는 비 생각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48-50p)

"···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내가 배운 건,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노력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는 거예요."

(3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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