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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참 묘한 소설이네요.
주인공은 없고, 주변 인물들만 존재하는 이야기.
읽는 내내 둥둥 떠다니는 유령이 된 기분이 들었네요.
"우리에게서 달아나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의 침묵으로 인해 신화 속 존재처럼 여겨진다.
사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우리가 호기심 가득하게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_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 1742년 (7p)
이다 투르페이넨 작가의 첫 장편소설 《숨의 조각》은 핀란드 헬싱키 도심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Rhytina stelleri> 에서 시작되네요.
전시된 거대한 동물의 뼈대, 그 정체는 <Rhytina stelleri>, 스텔러바다소를 뜻하는 과거의 학명이라고 하네요. 바다소는 바다소목(Sirenia)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 전체를 통칭하는 넓은 개념이고, 스텔러바다소는 바다소목 듀공과에 속했던 종으로 몸 길이가 최대 9미터까지 자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뼈대만 보면 공룡과 헷갈릴 만한 크기네요. 현재 살아있는 바다소목에 속하는 동물은 길이 3미터의 듀공과 매너티네요.
1741년 연구자 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나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발견된 지 불과 27년 만인 1768년에 완전히 멸종되고 말았네요. 그래서 소설은 신학자이자 박물학자인 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가 어떻게 스텔러바다소를 만나게 됐는지를 그려내고 있네요. 스텔러는 비투스 베링 선장의 대북방 탐험대에 합류했고,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 베링해 어딘가에 있는 베링섬(그들은 처음 만나는 지역마다 자신들의 이름을 붙였네요)에 난파되었을 때 처음으로 스텔러바다소를 만났는데 바다소들이 인간에 대해 전혀 경계심이 없더라는 거예요. 굶주린 선원들은 물개든, 바다소든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는데 물개 맛은 고약했고 바다소는 맛이 좋았다고 하네요. 수천 년간 평온하게 풀을 뜯으며 지내 왔던 거대 초식동물인 스텔러바다소는 불행하게도 인간의 먹잇감이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네요.
"스텔러는 파랑어치의 가슴에 칼집을 내고, 깃털에 흠집을 내지 않게 주의하면서
내장을 빼낸다. 갑판에서 바다로 던진 내장을 바닷새들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삼키는 것을 보며 스텔러는, 갈매기가 자기 동족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
혹은 먹잇감이 누구인지 모른 채 동족 포식을 행하는 것일지 생각한다."
(36p)
섬뜩한 장면이네요. 스텔러는 자신들이 무슨 일이 저질렀는지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예요. 바다 생물들에 비하면 인간은 훨씬 고등한 동물이라고 여겼을 테니까요. 인간의 오만함이 빚어낸 생태계 파괴의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감정들이 끓어올랐네요. 스텔러가 남긴 표본과 기록들은 후대로 이어졌고, 알래스카 총독 요한 함푸스 푸루옐름과 그의 가족들을 거쳐, 백 년 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초빙교수 팔라스의 저서 속에서, 헬싱키 대학교 해부학 연구실에서, 흩어진 동물 표본과 골격을 모아 복원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네요. 인간 때문에 멸종한 동물은 스텔러바다소만이 아니며, 현재도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네요. 작은 숨의 끊어짐이 결국 우리의 숨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과거의 실수들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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