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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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져요.

근데 기분은 잠깐이고, 쌀쌀해진 공기에 몸이 잔뜩 위축되면서 피로해지네요.

맑고 화창한 가을은 스치듯 지나가고, 온몸을 오들오들 떨게 만드는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네요.

계절도 입맛따라 고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인생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인지라, 유독 '명랑하게'라는 글자가 크게 보였네요.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는 풀꽃 시인 나태주와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상호 구원 인터뷰 에세이라고 하네요.

요근래 나태주 시인의 책들을 많이 찾아 읽고 있어서, 이번 책도 반가운 마음에 펼쳐 보았네요. 익숙한 두 사람의 조합, 어디서 봤나 했더니, 2024년 봄에 출간된 《나태주의 행복수업》의 개정판이었네요. 서울에 살던 김지수 작가가 충청남도 공주의 '풀꽃문학관'을 찾아가 나태주 시인과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을 2026년 새로운 얼굴로 선보이고 있네요. 언론인이자 심층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인 김지수 작가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쓰고 난 뒤, 풀꽃 시인을 만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네요.

"이어령이 자신을 우물 파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태주는 스스로 우물이 되려는구나." (111p)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사랑받고 있는 동시대 시인이 아닐까 싶어요.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시인이 직접 말해주네요.

"나태주의 시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나는 압니다.

군림하지 않잖아. 업신여기지 않잖아요. 다 안쓰럽게 여기잖아요.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곁에 오면 나는 살갗이 부들부들 떨려요. 역한 감정이 습자지처럼 배어 나와.

··· 잘난 사람이 아니라 아래서 뿌리처럼 엉켜 사는 예쁘지 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어요.

··· 모든 이치가 다 그래요. 변방에 있는 사람이 나중에 다 중심이 됐잖아.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만주족이 들어와 중국 왕조를 세웠어요.

시인도 백석, 윤동주, 김영랑, 김소월, 정지용······

이런 분들 다 서울 사람, 아니에요. 변두리 시골 사람이죠." (91p)

이 책은 건조하게 메마른 삶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모이스처 같아요. 순하고 깊은 보습력으로 서툰 어른들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네요.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아본 어른으로서, 풀꽃을 돌보는 키 작은 정원사로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따스한 햇볕처럼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이렇더라, 말해주니 참 좋아요. 특히 '나는 약하다, 나는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고백이 무척 용기 있고 멋지다고 느꼈네요.

"'졸렬하다'라고 할 때마다 쾌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쾌감까지는 아니지만 편안해져요. 그게 사실이니까."

"사실이라고요. 거한 포장지를 벗기는 그런 느낌인가요?"

"그럼요. 졸렬하다는 건 작고 못났다는 겁니다. 졸은 '잘다, 서툴다'란 뜻이고

열은 '잘하지 못하고 열등하다'는 뜻이죠.

나는 서툴고 모자라고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내가 그렇다고 계속 얘기하려고 해요."

"나는 졸렬하다, 나는 졸렬하다······."

타인의 판단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긍정할 때

인간은 당당해진다.

'나는 약하다.' '나는 외롭다.','나는 모른다.''그래도 괜찮다.'

본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지수도 강해지는 걸 느꼈다.

보편적인 '못남'이 각자의 독특한 '자기다움'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187-188p)

다들 마음이 쭈글쭈글 작아질 때가 있잖아요.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해서 실망하고 속상해서 자신의 '못남'을 탓하게 되는데, 시인은 '그게 너'라고, 못나도 괜찮다는 거예요. 스스로 약한 줄 알기에 함께할 줄 아는 거예요. 서로 챙기며 아끼는 마음이 쌓여서 사랑이 되고 웬만해선 무너지지 않는 행복이 되는 거라고요.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댈 게 아니라 오늘 당장 억지로라도 행복하자고 말이에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일, 그것만이 꼭 해야 할 일이네요.

"아내는 내가 죽을병에 걸려서

병원에 있었던 6개월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해요.

울면서 나 몰래 장례식장 알아보러 다녔으니······

그런데 난 또 다르게 생각해요.

그것도 내 인생이다. 감옥 생활을 해도 내 인생이다.

소나기에 흠뻑 젖고 되는 거 하나 없는 날도,

그날이 내 날이다.

그날을 보듬어줘야

다음 날이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가 휘파람 불듯 말을 이었다.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40-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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