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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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 30년은, 변하지 않은 걸 찾기가 힘든 세월이네요.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렸네요.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은 앳된 열다섯 살로 박제되어 있어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도 안 되네요. 친구네 집에 모여서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이 참으로 순수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그 시절의 마음, 그 기억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데라치 하루나 작가의 소설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네요.

소설은 중학교 동창인 네 명의 친구들, 나가세, 다카미네, 모리, 시즈쿠가 마흔다섯 살이 된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5년 뒤, 또 5년 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 기억들을 상기시키고 있네요. 마치 사진첩을 들춰보며 과거를 회상하듯이, 네 명의 친구들이 공유한 30년 동안의 기억과 연대를 독특한 시간 역행 방식으로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네요.


"모두가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모리도 그렇고, 다카미네도 그렇다.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 라는 단서를 붙이고 엄청난 비밀을 쏟아낼 때도 종종 있다.

그러는 이유를 모른다. 신뢰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은 든다.

시즈쿠는 달랐다. 중요한 일이건 그렇지 않은 일이건

내가 먼저 묻지 않는 한 입을 열지 않는다."

(36p)


신기한 건 대단한 우정이나 엄청난 사건 없이도 몰입감이 크다는 점이네요. 현실 속 동창을 만난 듯한 기분이랄까요. 이들이 들려주는 지난 이야기가 어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뭔가를 깨운 것 같아요. 일본에서 물방울무늬는 예부터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비를 의미하고 살아가는 힘을 상징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슬픔의 눈물까지도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빛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소중한 사람에게 선사하는 선물로 물방울무늬를 선택하기도 했대요. 나가세는 무심히 떠나는 시즈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데, 지난 30년의 기억들이 재생되면서 비로소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네요.

중학생 시절 미술 선생님이 들려준 '영원'에 대한 가르침이 네 친구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 각자의 삶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고, '영원'이 뭔지 모르던 아이들은 물방울이 비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듯이 세월따라 변했지만 여전히 인연은 이어지고 있네요. 보석을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리폼 회사 '주얼리 다카미네'는 현재 문을 닫지만 네 친구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그들의 기억과 인연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물방울 모양의 라피스라줄리 목걸이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기억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계속 전해질 것 같네요. 어쩌면 이 책이 우리에겐 물방울 모양의 라피스라줄리 목걸이와 같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네요.


"수시로 만나서 어울리는 않지만,

늘 마음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하지 않아?"

(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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