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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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과학자들은 어떤 대상의 특성과 행동이

그것을 발생시킨 물질과 과정에 의해 결정되며,

이 모든 것은 중력과 같은

보편적인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과학자의 관점이 명백히 설득력을 잃는

극단적인 예를 하나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59p)


똑똑한 과학자들이 그토록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증명해냈으나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가 있네요.

인간의 뇌와 의식, 정신 세계에 관한 연구는 지속되고 있고, 우리는 과학을 통해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중이네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수실로의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굉장히 놀라운 책이네요.

단순히 최신 신경과학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고 해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인데, 여기에 눈길을 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별한 강연과 청중의 질문이 있었네요. 저자는 프린스턴 신경과학 워크숍에서 기조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은 인공지능에 쓰이는 도구들을 활용해 인간의 뇌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뒤이어 '과학에서 성장하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강연에서 난생처음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처 입은 유년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된 여정을 이야기했다고 해요. 강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서빙을 하던 여자 직원이 다가와, 감동을 받았다면서 "선생님은 어떻게 그걸 해내셨어요?" (11p)라고 묻더라는 거예요. 그때는 뻔한 조언이나 위로의 말이 소용 없다고 생각해서 망설이다가, "끈기와 여러 행운 덕이었죠." (12p)라고 답했는데, 자신의 대답이 어리석게 느껴져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래요. 현재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나온 삶의 여정을 전부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연구를 이끈 '창발 emergence' 개념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설명하는 개념이라는 걸 깨달았고, 자신의 삶과 뇌과학을 연결한 이야기가 완성되었네요.

우선 창발이라는 개념은 개별 요소만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성질이 전체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마약 중독인 부모의 방임, 폭력, 보육원 생활 등 저자의 유년 시절은 상처와 결핍의 파편들이며,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우연한 만남과 기회들이 연결되어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라는 새로운 삶으로 발현되었네요. 물론 그 과정들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네요.

영하의 모든 온도에서 물이 얼음으로 존재하다가 정확하게 섭씨 0도에서 갑자기 물로 변하는 현상을, 물리학자들은 '상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현상이네요. 생물학적 뇌 신경망에서도 '카오스의 가장자리'라고 부르는 상전이 현상이 나타나는데, 과학자들도 이것을 마법의 영역으로 여긴다고 하네요. 기억이 얼음처럼 굳어졌다가 물처럼 흐르면서 새로운 생각을 빚어낼 수도 있지만 카오스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경직되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저자의 유년 시절은 완전히 카오스였고, 보육원 생활은 그보다 더 해로운 경직성을 강요했지만 다행히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 서 있게 되었던 거죠.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아 비교적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누나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하네요. 다만 사소해보이는 결정들과 잠재된 가능성, 행운과 불운이 서서히 쌓여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 외에는 말이죠. 창발적 속성 중에서 가장 특별한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연구하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를 다시 만들어내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적절한 조건과 연결의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를 만들어낸 바로 그 네트워크들이, 우리가 망가졌을 때 우리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367p)라고 생각해요. 카오스,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창발이라는 과학의 개념이 우리 삶에 이토록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니, 지적인 발견인 동시에 뭉클한 감동까지 주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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