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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필사북 - 이동진 평론가 추천!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건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새로운 필사책이 나왔네요.
기존에 접했던 구성은 고전 속 명문장이나 명언 혹은 명대사를 짧게 발췌하여 따라 쓰도록 만든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작품 전체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단편소설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네요.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최고봉으로 꼽는 김승옥 작가의 대표 단편 4편을 수록한 필사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예전에 작가 지망생들이 기존의 명작들을 필사하며 문장력과 표현력을 체득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표본이 된 글이 바로 김승옥 작가의 문장이라고 하네요.
《무진기행 필사북》은 수많은 거장 작가들이 고백해 온 창작의 비밀통로였던 김승옥 문학의 정수를 독자의 손끝에서 경험하도록 만든 책이네요.
이 책에는 《무진기행》 외에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力士》, 《건 乾》이라는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왼편에는 원문이, 오른편에는 필사하는 빈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김승옥 필사책'이네요.
사실 《무진기행》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라서 문학 수업의 연장선, 시험을 위한 작품 해설에만 치중했던 소설인데, 이렇듯 직접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가는 경험은 처음이네요. 필사의 매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단편소설 전문을 필사하는 것은 새로웠네요. 작가들이 왜 창작 비법으로 여겼는지 조금 알 것 같네요. 손끝의 속도가 느린 만큼 문장이 이어지는 호흡과 리듬감, 작품의 구조를 깊이 있게 흡수할 수 있네요.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쓰기 때문에 눈으로 읽는 독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독을 하게 되고, 뭔가 자연스럽게 작가의 문체와 작품 전체를 입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대단한 뭔가를 깨닫거나 얻었다기 보다는 한국 현대문학의 분기점이 된 김승옥 작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네요. 무엇보다도 1960년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서, 문학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는 계기였네요. 스물네 살 청년 김승옥이 넉 달 걸려 완성한 소설 <무진기행>, 전쟁 이후 역사와 이념에 짓눌려 있던 한국 문화계에서 개인의 꿈과 낭만, 자기 세계를 전면에 등장시켜 '감수성의 혁명'이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한국 현대문학에서 분기점이 된 작품들을, 제대로 김승옥 문학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