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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 가사의 일부네요.
십대 시절에는 서른이 멀게 느껴져서, 노래를 들으면서도 가사의 의미가 크게 와닿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서른 즈음이 아니라 서른을 훨씬 넘긴 뒤에야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느낌이 무엇인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네요.
책 제목만 봐서는 그리 끌리는 주제는 아니었네요. 하지만 첫 문장이 강렬했네요.
"우리의 삶은 오직 단절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9p)
《단절(들)》은 프랑스의 철학자 클레르 마랭의 에세이네요.
'단절' 옆에 '들'이라는 복수의 표현을 괄호 안에 넣은 것이 인상적이네요. '삶은 단절'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단절들이 존재하기에 '단절들'을 빼놓을 수 없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네요. '단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단절 = 이별'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거죠.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도 삶의 본질을 깨닫기도 하는데 제 경우는 직접 단절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수용하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라는 점에서 완결의 상태가 아닌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네요.
단절이 칼로 자른 듯 깔끔한 절단이면 좋을 텐데, 삶에 있어서 단절은 '갈기갈기 찢어짐', 즉 삶이라는 천을 찢는 것이라서 각자 뚜렷한 윤곽선을 되찾기 어렵고, 그 때문에 완벽한 단절은 거의 불가능하네요. 삶 속의 단절은 육체적, 신체적 경험으로 뿌리째 뽑혀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인데 우리는 그걸 잃는 순간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뒤늦게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모든 단절은 고통스럽고 우리는 그로 인한 상처를 끌어 안고 살아가며, 우리를 고문하는 경험들을 거치게 되네요. 고통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단절은 삶의 위험 요소지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는 자아의 출현, 자아의 실현과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네요. 다만 단절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자발적으로 벌어지는 비극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가 '깨는' 존재라기보다는 '깨진' 존재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이 책에서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단절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단절들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드네요.
단절은 우리에게, 삶에는 안전한 보장이 없다는 현실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네요. 본질적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용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기쁨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삶의 위험을 감수하며 그 안에서 가능한 모든 기쁨을 느끼려는 시도가 살아갈 용기를 준다고 이야기하네요. 예측할 수 있는 것, 알고 있는 것들은 우리를 더 이상 두렵게 만들 수 없네요. 맞닥뜨려야만 해요.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자신의 몫임을 확인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