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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 그림엔 사연이 있다, 개정판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6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좁은 다락방을 혼자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꾸몄던 적이 있어요.
미술 시간에 썼던 색종이로 알록달록 장식을 하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놀았던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이네요. 다른 장소도 아닌 다락방이라서, 뭔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네요. 아늑한 다락방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듯이, 르네상스부터 현대미술까지 명화 속에 담긴 사연들을 들려주는 책이 나왔네요.
《다락방 미술관》은 문하연 작가의 미술 에세이 개정판이네요. 초판의 내용과 친근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장들을 시대 변화에 맞게 다듬고 몇 가지 표현은 고쳐 썼다고 하네요. 전공자는 아니지만 미술 덕후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 스물여덟 명의 삶과 명화에 숨겨진 사연들 그리고 전 세계 유명 미술관 스물일곱 곳의 정보를 소개하고 있네요.
이 책에서는 어려운 미술 이론이 아닌 화가라는 인물에 초점을 두고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고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네요.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라는 작품 제목 옆에는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을 망설인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고 해요.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는 SF 소설의 한 장면처럼 뭔가 초현실적인 고요함이 신기했네요.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사막 한가운데에 맹수인 사자가 잠든 집시 여인 곁에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부조화 속 조화였네요. 마치 루소의 일생 같기도 하네요. 루소는 평생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으며 어느 유파에도 속한 적이 없는 '일요화가', 즉 본업은 따로 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고 해요. 루소는 <잠자는 집시>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는지, 고향 라발 시의 시장에게 자신의 작품을 셀프 추천하며 판매금액까지 제시한 편지를 썼다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네요. 루소는 그림 외에도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고 실력도 상당해서 말년에는 바이올린 레슨으로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고, 아내 클레망스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프랑스 문학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심지어 베토벤홀에서 연주도 했다고 하네요. 세관원으로 22년을 일했고, 40세가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49세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퇴직했는데 그의 그림에 대해 당시 비평가들은 조롱과 멸시를 보냈대요. 정식 코스를 밟은 화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했던 거죠. 하지만 무명의 루소를 처음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으니, 시인이자 극작가인 알프레드 자리는 루소의 <전쟁>이라는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문학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네요.
"화가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루소는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모르는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꼭 조롱을 할 필요는 없다. (···) 규격에서 벗어나는 건 현대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몽땅 미친 짓, 바보 짓이라고 밀어두면 속 편하기 때문이다. 루소는 사회의 어리석은 편견의 제물이 되었다." (158p)
루소는 알프레드의 소개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 그와 애인의 커플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지금 봐도 당사자가 제일 싫어할 만한 그림이네요. 어찌됐든 아폴리네르를 통해 60대의 루소는 20대인 피카소를 만났고, 그의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은 피카소가 자신의 아틀리에인 '세탁선'에 초대해 그를 위한 파티를 열어줬고, 감동한 루소가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와 자작곡을 연주했고, 피카소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해요.
"우리 둘 다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죠. 당신은 이집트 양식에서, 나는 현대적 양식에서." (161p)
정말이지, 루소의 자신감은 최고인 것 같아요. 남들이 뭐라 하건 굴하지 않는 자세가 꿋꿋하게 본인의 길을 개척해낸 진정한 예술가답네요. 그 어디에도 없는, 본인만의 독보적인 화풍이 결국에는 후대 사람들이 칭송하는 명화를 탄생시켰네요. 알고 보면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화가들의 삶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