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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일본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아요.
마치다 소노코 작가의 《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는 제목만큼이나 아름답고 서정적인 연작 단편집이네요.
이 소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다독이며 각자의 아픔을 끌어안고 헤엄쳐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게이타는 헤엄치고 있구나." (57p)라는 말이 이토록 강렬한 울림을 주다니!
앞뒤 맥락 없이 들으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헤엄친다는 말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여기에선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네요. 우리가 물고기라면 헤엄치는 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물고기는 고향이 카메룬이래. 카메룬이면 아주 먼 곳인데, 이 작은 마을의 작은 수조 속에서 살다니 불쌍해."
"그렇지 않아. 어떤 생물이든 그 장소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어. 실제로 이 녀석들은 사이좋게 헤엄치고 있잖아." (35p)
작은 수조 속 물고기가 불쌍한지, 아니면 행복한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류의 말처럼 사이좋게 헤엄치고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우리 역시 소설 속 인물들을 들여다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잖아요. 안타까운 사연들,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무채색 풍경 같은 일상일 거예요. 하지만 이 소설은 우리를 풍덩, 그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네요.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 삭막한 현실을 살아내느라 애쓰는 모든 사람들이 물고기라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멋질 것 같아요.
"그런 건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거야.
남한테 맞으면 아파. 그런데 똑같이 때릴 수 있는 손바닥이 나한테도 있어.
이런 깨달음을 반복하는 거지." (85p)
겨우 중학생인 게이타가 마치 인생을 다 살아본 어른 같은 얘길 하고 있네요.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게이타의 모습이 건강하고 믿음직해보여서 좋았네요. 그런 게이타라서 하루코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그 진심이 통하는 장면이 감동을 주네요.
"할머니가 말이야, 이곳은 조금 큰 수조라고 그랬어. 이 마을은 수조라고."
"그리고 할머니는 '이 할미가 우리 하루코의 초콜릿구라미가 되어주마'라고 했어."
"마우스브리더 말하는 거야?"
"그날 이후 조사해봤지. 어딘지 모르게 너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부모가 입속에 치어를 머금고 키우면서 외적으로부터 지켜주는 물고기라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더라." (97p)
저마다의 결핍과 상처가 홀로 있을 때는 절망스럽지만 서로의 관계 속에서 온기를 주고 받으며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간다는 것이 작은 희망을 주네요. 땅 위에 사는 우리는 제각기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물속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요. 다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 아이가 바라본 여름 밤하늘을 상상했네요. 밤하늘을 신나게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처럼 세상에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좁은 어항에서 뛰쳐나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따뜻한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