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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과 전쟁 - 무기화된 화학 이야기
앨리스 러브조이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필름이라고 하면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 사진을 찍기 위한 필수템이었죠.
까만통에서 필름을 꺼내 카메라 안쪽에 넣은 다음 정해진 수만큼 사진을 찍었더랬죠. 현상이나 인화를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촬영한 필름을 암실에서 현상이라는 약품 처리 과정, 즉 화학적 과정을 거쳐야만 선명한 사진이 완성된다는 것은 알고 있네요. 스마트폰으로 고화질 사진을 언제든지 찍을 수 있는 세상에서 필름 이야기는 낭만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필름이 사실상 군수품이자 무기화된 화학 기술의 산물이었다는 충격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 나왔네요.
《필름과 전쟁》는 필름 공장에서 맨해튼 프로젝트까지, 무기화된 화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네요.
저자 앨리스 러브조이는 대학에서 영화학과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영화 전문지 <필름 코멘트>의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미네소타 대학교 문화연구·비교문학과 교수로서 영화와 미디어의 물질적 기반이 근현대 세계의 정치·경제·군사 구조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연구해왔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필름의 화학적 기반이 여러 형태의 폭력과 긴밀히 얽혀서 무기화된 화학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네요.
여기에는 두 개의 공장, 즉 미국의 테네시 이스트먼 공장과 독일의 아그파 볼펜 공장이라는 대표적인 필름 기업이 등장하네요. 필름을 만들어내던 공장이 어떻게 무기 공장으로 바뀌어갔는지를 추적하고 있네요. 테네시 이스트먼과 코닥이 셀룰로스아세테이트 산업을 발판 삼아 고성능 폭약 제조와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관여하면서 불과 22년 사이에 안전 필름을 거쳐 원자폭탄을 만들어냈네요. 히로시마에서 폭탄이 터진 그날 미국의 극장가에서는 코닥의 필름으로 찍은 뮤지컬 영화 「닻을 올리고」가 상영되고 있었고, 이 작품의 내용은 막바지에 다다른 전쟁을 배경으로 휴가 나온 해군들의 로맨스를 다룬 경쾌한 코미디 영화였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네요.
필름 공장은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내면서 벨기에령 콩고의 광부들, 라벤스브뤼크에 수감된 여성들과 강제 동원 노동자들, 히로시마의 시민들을 비롯하여 곳곳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필름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네요. 또한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지적했듯이 화학물질은 방사능과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뒤바꾸고 있지만 그 위험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네요. 필름 산업이라는 화학산업이 걸어온 흔적을 확인하면서 그 안에 얽혀 있는 정치, 경제, 환경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였네요. 기술의 발전, 문화적 풍요 이면에 숨겨진 폭력과 착취의 구조가 여전히 오늘날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경고이기도 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