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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무늬 모자
안 세르 지음, 송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 소설 속 '파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화자는 누구인 걸까요.
안 세르 작가의 장편소설 《호피무늬 모자》가 탄생한 이면에는 아주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있네요.
한 편의 소설로 그려낸 인물, 이 소설의 주인공 파니는 금빛 속눈썹이 난 길고 푸른 눈을 가진 예쁜 아이였고, 담이며 나무며 옷장 위며 사방을 기어오르는가 하면, 입을 앙다문 채 피아노를 쳤다고,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지만 이웃집 아이가 피아노를 쳐봐도 되는지 물었을 때는 "아니"라며 딱 잘라 거절했고, 아이들을 아주 못된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부분에서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네요. 파니에 대해 설명해주는 화자는 파니의 곁에서 평생 함께하며 지켜봐준 친구예요. 화자는 우리에게 파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자세히 들려주고 있어요.
"사실 파니는 갇혀만 있던 존재는 아니었다. 그애의 내면에는 항상 호피무늬 모자를 쓰고 웃는 여자가 있었고, 가장 뜻밖의 순간에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어떤 틈새라도 열려 있으면, 그 여자는 언제든 마치 돌풍처럼 그 틈을 홱 열어젖히고 등장했다. 파니의 말 한마디, 눈짓 한 번에서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일 때면 화자는 아연했다. ··· 그 애 안의 여자는 온전한 인격체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찰나에만 드러냈는데, 호피무늬 모자를 쓰고 발랄하게 웃으며 제멋대로 구는 모습으로 보아, 딱딱하게 긴장해 있는 파니의 몸속에서도 꽤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화자는 그 여자가 두려웠다." (15-16p)
파니와 많은 웃음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해온 화자는 친구가 약간 어긋난 행동과 말을 할 때에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다시 단순하고 쾌활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파니는 그런 변화를 보여주기도 전에 떠나버렸어요. 화자는 소중한 친구의 빈자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존엄하게 애도하고 있어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면서 아픔과 상실감을 견뎌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네요. 누군가에겐 조현병 환자,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절친인 화자는 파니가 본디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에 파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거예요. 파니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호피무늬 여자는 약해진 파니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악당일 뿐, 텅 비어버린 마음은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파니는 죽음을 몇 달 앞둔 생의 한 시점에서 신과 종교의 구원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결정적인 것이 뭔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자기 말을 듣고 이해해줄 존재를 끊임없이 찾아 헤맸던 거예요. 절친인 화자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더 이상 파니의 말을 들을수 없기에 화자는 지나온 시간 속에서 파니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네요.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사랑했노라고.
"여동생이 마흔세 살의 나이로 자살한 후 이 책을 썼습니다. 저와는 상당히 각별한 사이였어요. 그 애를 기리기 위해 가능한 한 아름다움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여동생이 죽었을 때가 3월이었는데, 노트에 기록해둔 걸 보니 9월에 집필을 끝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지나온 세월 내내 저는 동생을 관찰하고, 그 애와 이야기하고, 그애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고, 제게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 생각해왔습니다. 책은 완전한 형태로 제 안에서 쏟아져나왔습니다." (185-18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