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잊을 수 있다면 잊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김희재 작가의 연작 소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관한 이야기네요.

첫 번째 화자는 쌍둥이 여동생 신영이고, 두 번째 화자는 신영의 조카인 이소, 세 번째 화자는 신영을 돌보고 있는 간병인 성희, 네 번째는 쌍둥이 오빠의 아내이자 이소의 엄마인 주연이네요. 신영은 현재 요양병원에서 치매 환자로 입원 중이라서 그녀가 기억하는 것들은 온전치 않지만 간병인 성희를 심리상담사라고 여기면서 깊숙히 숨겨둔 트라우마를 조심스레 꺼내놓고 있네요. 담담하게, 그 차분함이 묘한 감정을 일으키네요.

"적벽돌로 지어진 마당 없는 일 층짜리 단독주택.

그 집은 한때 내 쌍둥이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이소가 살던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이기도 했죠. 나와 쌍둥이는 한때

그곳에서 살았고, 살아남았습니다.

생존. 그래요, 우리는 생존했습니다."

(26p)

살아남은 세 여자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또 하나의 여자 덕분에 우리는 이제 그들의 인생을 기억하게 되었네요. 오랜 세월 갇혀 있던, 그 고통의 기억들이 적나라하지 않은 방식으로 묘사되어서 고마웠네요. 기억의 재구성, 끔찍한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건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이니까요. 간병인 성희를 거쳐서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이어지고, 깊은 교감을 통해 연대하게 되네요.

"내가 알기로, 기억을 빨리 잃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슬픈 사람들이었다."

(38p)

가장 슬픈 문장이 아닌가 싶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은 그 사람이 떠올랐고,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그의 삶이 몹시 안타까워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슬픈 감정이 밀려오네요. 기억은 감정의 흔적들, 그것을 잃어버리면 표정도 사라지고 말아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하죠? 중요한 건 지금 뭘 기억하고 있느냐예요.

우리가 산 세월만큼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인생이 되거든."

(52p)

참으로 맞는 말이네요.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더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모든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다고 하잖아요. 좋았는지 혹은 나빴는지,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반응하게 되는 상태에서 숨길 수 없는 본질이 드러나는 법이죠.

"그곳을 떠날 때, 언니가 제게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은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지난 일은 다 잊고 살아. 잊으려고 애쓰지 말고, 몽땅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아.'

처음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 언니도 아무 말이나 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별의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횡설수설하고 만 것이라고요. 그러나 살면서 저는 잊는 것과 잃어버린 것의 차이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잊는 것은 자의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자의가 아니므로, 무언가를 잃고 나면 영영 되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실제로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므로, 언니는 저를 괴롭게 하는 원죄의 기억을 차라리 잃어버린 것처럼,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처럼 살라고 덕담을 해준 것이었습니다."

(233-234p)

감옥과 성,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끝끝내 생존한 그녀들이 오래오래 안녕하기를 바랄 뿐이네요. 또한 고통의 기억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