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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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태양의 열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나는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바보짓이라는 걸, 한 발자국 움직인다고 해서

태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발짝, 딱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96p)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네요.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의 행동이 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솔직히 이전에 읽었을 때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를 둘러싼 법조인들과 사람들의 태도에서 '부조리'의 고약한 얼굴을 마주했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요. 다만 죽은 아랍인에게 '네 발의 총'을 더 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이방인》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찬하는 작품이라서,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읽어봐야 가치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남들이 말하는 이유 말고 자신만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네요.

이 소설은 1942년 프랑스 파리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당시 카뮈는 변방에서 온 스물아홉 살의 무명작가에 지나지 않았지만 롤랑 바르트, 가에탕 피콩 등 유명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아무런 환상도 부여하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며,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 (194p)이라고 언급했다고 해요. 훗날 카뮈는 마흔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삼 년 뒤 마흔일곱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네요.

《이방인》은 20세기 실존주의 문학 최고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카뮈 자신은 "나의 문학은 실존주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194p)고 말해 자신의 문학을 실존주의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을 거부했다는데,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네요.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자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어느 누구도 엄마에 대해 눈물 흘릴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마치 그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씻어내고 희망을 비워 내기라도 한 것처럼, 

징조의 별들이 가득한 이 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나 자신을 열었다."

(190-191p)


어떤 상황이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던 뫼르소, 그는 정말 냉혈한일까요, 아니면 사회적 관습이나 위선에 타협하지 않는 솔직한 인간인 걸까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 이단인의 전형을 보여주네요. 뫼르소라는 인물을 억지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를 제멋대로 판단하는 주변인들을 주목했네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네 발의 총성!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면, 주인공 황동만이 마을 동산에 올라 자기 이름을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엔 그렇게 꼴보기 싫더니 점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뫼르소의 바보짓은 공감할 수 없지만, 황동만의 헛발질은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유머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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