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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 -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 심심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국 드라마에서 다운증후군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요.
2022년 방영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처음으로 정은혜(개명 후 서은혜) 배우를 알게 됐네요. 최근 근황을 보니 본업인 캐리커처 그림 작업 외에도 발달장애인 남편과 함께 카페 운영으로 경제적 자립을 실천하며,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자신들처럼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 14명의 작업 공간 월세를 지원하기로 했다네요. 발달장애인 일자리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정은혜, 조영남 부부의 사연을 방송으로 보면서 두 사람의 결혼 자체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했네요. 지적장애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무관심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는 데에 한몫을 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주류의 관심 밖 영역이기도 하네요.
《지적장애의 얼굴들》은 리시아 칼슨의 책이네요.
저자는 미국 프로비던스칼리지 철학과 교수이며, '지적장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확장한 선구적인 학자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지적장애의 역사적 세계를 살펴보고, 지적장애의 철학적 세계를 탐구하는 내용이네요. 우선 저자는 자신이 어떤 계기로 지적장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1980년대 후반, 철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시절에 자원봉사 활동으로 중복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내게는 익숙함 속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존재가 된 이들을 철학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12p)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플라톤은 결함 있는 아기는 죽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했고, 로크와 칸트는 이성이 부족한 사람을 인간 이하로 정의했으며, 이 집단에 관한 현대적 논의의 대부분은 동물권에서 이뤄졌다는 거예요. 중증의 정신지체인이 비인간동물과 유의미한 방식으로 구별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는 거예요. 가장 최악은 동료 철학자들의 반응이 아닌가 싶어요. 저자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지적장애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 꽤나 자주 "혹시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요. 이 질문에 깃든 가정은 이 주제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이유가 가족 중에 지적장애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매우 고약하고 불쾌하네요. 지적장애에 관한 연구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철학적 과제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미리 차단하고자, '나는 비장애인 철학자이다. 지적장애와 관련된 철학적 질문이 학문적 관심에 충분히 값할 뿐만 아니라 배제, 억압, 비인간화라는 가장 심오한 문제에 대해 알려준다는 것을 마음 깊이 믿고 있다. 따라서 지적장애인과의 개인적 친밀함이 이 대화에 참여하기 위한 전제가 되어서도, 이 주제를 철학적으로 말할 자력을 박탈할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다.' (14p)라면서 이 책의 목표는 지적장애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 지적장애인을 좀더 온전한 인간 주체로 그려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네요.
철학 담론에서는 플라톤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지적장애인을 '앎의 주체'로 간주될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규정하며, 지적장애인의 목소리를 배제시켜왔네요. 결함 있는 아기는 죽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했던 플라톤, 이성이 부족한 사람은 인간 이하로 정의한 로크와 칸트, 비인간 동물과 지적 능력이 유사한 인간에게 더 높은 도적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피터 싱어 등등 전통적 접근에서 정신지체인의 정의론을 다루는 가장 헌신적인 연구조차도 정신지체와 같은 상태를 '객관적으로 나쁘다'는 규범적 판단을 내렸네요. 그러나 전혀 다른 초상을 보여준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미셸 푸코네요.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정신의학의 언어가 이성의 틀 안에서 광기를 규정하고 광기의 목소리를 강제로 침묵시키는 일방적 독백이라고 폭로했는데, 지적장애를 다루진 않지만 철학이 지적장애를 다뤄온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는 점에서 지적장애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흐름을 되짚는 작업에 근간이 되었다고 하네요. 푸코적 시각과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지적장애 역사를 탐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네요. 어쩌면 이것은 지적장애만이 아니라 '혐오'의 역사적·심리적 뿌리와 맞닿은 불편한 진실인지도 모르겠네요. 중요한 것은 지적장애인을 동등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재정의하고 인식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