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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라는 제목 옆에 세로로 길게 적혀 있는 문구에 눈길이 갔네요.
월 급 사 실 주 의 2026
암호 같은 문장이 궁금했죠. 장강명 작가님이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과 규칙으로 동인을 만들어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고, 참여 작가 열한 명이 모여 여러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는데 문학동네에서 반기면서 책 제목에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를 붙인 단행본이 나오게 된 거래요. 실제로 작가들끼리 세부 규정을 만들거나 선언이나 결의문을 채택한 건 전혀 없고, "우리는 소설을 쓴다." (299p)라면서 기본을 강조하고 있네요. 작가의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고, 소설은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니까요.
영업 중단을 발표한 홈플러스, 경영진은 책임을 외면한 채 법적 처벌마저 피했고 모든 피해는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네요.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즉시 계약해지 통보로 너무나 쉽게 내쳐졌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네요. 홈플러스를 살리겠다며 노조원들이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네요.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책임은 엉뚱한 이들이 떠맡고 있으니 말이에요.
쓰윽 목차를 먼저 훑어봤네요.
여덟 명의 작가 이름 옆에 나란히 적힌 단편소설의 제목, 그 아래에는 친절하게 관련 키워드가 해시태그로 달려 있네요.
잡지기자와 임금체불, 예능 PD와 생방송 사고, 웨딩 헬퍼와 투명 인간화, 하청의 하청, 정규직의 함정, 기간제 교사, 대타 세우기, 승진 심사 등등.
앞서 봤던 기사 때문인지 박연준 작가의 <경희와 경희 아닌 것>이라는 작품이 머릿속에 맴도네요. 대형마트 지하 식품 코너에서 이십오 년째 일하다가 잘린 고미숙과 그녀의 딸 경희의 이야기를 보면서, 경희가 옛날 일기장에서 찾은 문장을 보며 할 말을 잃었네요
"바흐를 들으며 빛이 좋은 곳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창밖으로 날아다니는 새를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33p)
이토록 소박한 일상의 꿈이라니...
평생 일하던 엄마 고미숙이 고작 두 달을 쉬면서 머리가 백발이 된 것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네요. 경희는 자신이 열매라면 누구라도 먹고 싶어하는 탐스러운 열매가 되길 바랐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고, 아무도 먹을 수 없는 열매이고 싶다는 말이 가슴을 콕 찔렀네요. 하청의 하청 업무를 도맡아 하는 작은 회사에서도 사장, 실장, 과장이 상사랍시고 평사원인 경희를 마구 부려먹는 모습은 얄밉다 못해 화가 나네요. 경희는 을 중의 슈퍼 을로 살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었던 거예요. 문득 사과도 열심히 먹고 늙는 것도 열심히 늙고, 뭐든 열심인 엄마 고미숙을 바라보다가 깨닫게 된 거죠. 아하, 나도 다르지 않구나... 열심과 성실이 뭐가 나쁘겠어요. 그걸 이용해먹는 세상이 못된 거죠.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경희와 고미숙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멈출 생각이 없으니, 재벌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부디 모녀의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 꿈꿔보네요. 착한 사람이 더 이상 호구가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