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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ㅣ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잘 지내니?"
"응."
"너는?"
"나두, 잘 지내."
한때는 거의 매일 붙어지냈던 친구에게 이제는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고 있네요.
가까이 있을 때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네요.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어디에 있든, 늘 잘 지내길 바라는 그 마음이 온전히 느껴져서, 괜찮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었네요.
문학과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 같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글과 화가의 그림을 마주할 때면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해요.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어쩐지 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주는 친구 같아요.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 두 예술가처럼.
《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는 모티브 세계문화전집 시리즈 첫 번째 책이네요.
세계문화전집 시리즈에서는 대문화와 화가, 작곡가와 시인, 철학자와 사진가 등 시대와 분야의 벽을 넘어 서로의 작품을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는 것, 그래서 제목에 붙은 'X'의 의미는 교차(X)이자 곱셉이며 두 사람의 삶이 교차하여 조명하는 기획이라고 하네요. 좋음 곱하기 좋음, 그 합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책인 것 같아요.
부드러운 파란색 표지 가운데에 제가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 아몬드 꽃> 그림이 있어서 잠시 감상 모드가 되었네요. 이 그림은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기뻐하며 정성껏 그린 작품이라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요. 아몬드 나무는 이른 봄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중 하나로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과 풍요, 부활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실제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병들고 힘든 시기에 동생 테오를 위해 가장 희망찬 그림을 그렸고, 동생 역시 막 태어난 아기에게 사랑하는 형의 이름인 빈센트를 물려줬으니, 희망과 사랑의 결정체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빈세트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는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헤세는 반 고흐의 작품을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1853년에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를 발견했고, 1922년 『노이에 룬트샤우』에 실린 「이국적 예술」이라는 글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도스토옙스키와 나란히 '후기 유럽 예술에서 가장 강한 인간'으로 지칭했다고 하네요.
위대한 두 예술가가 생전에 숱하게 반복해서 썼던 말이, '안부를 전하며'라고 하네요. 헤세가 쓴 편지는 남아 있는 것만도 4,4000통에 달하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650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책에서는 두 예술가의 생애와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네요. 이 책을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친필 편지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네요. 시공간을 넘어 그들의 편지를 받아본 당사자가 된 것 같아서 특별한 감동이 있었네요. 반 고흐 뮤지엄 아카이브 928통 편지를 전수 확인하고, 헤르만 헤세의 후손으로부터 미공개 수채화와 친필 편지 우너본을 직접 받아 국내 최초로 공개한 책이라는 점, 이 책의 핵심 내용들은 독일 국제 헤르만 헤세 학회 『헤세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지』에 수록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서문에는 독일 헤르만 헤세 학회 일원이자 독일 칼프 헤르만 헤세 박물관 관장인 티모 하일러가 세계문화전집 프로젝트 시작을 축하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네요.
"헤세에게 안부란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의식의 표현이며, 상대방의 내면적 본질에 대한 인정이다. 반면 반 고흐에게 안부의 형식은 무엇보다도 부재하는 물리적 현존의 대체이며, 감정의 닻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영성에 대한 뚜렷한 감수성이기도 하다. ··· 두 사람 모두 예술을 내면의 위기에 대한 실존적 표현이자 자아 탐색의 수단으로 이해했다. 헤세의 작품이 담론적이고 철학적 논증의 성격이라면, 반 고흐의 세계 해석은 무엇보다 시각으로 ㅡ 색채, 붓의 궤적, 모티브의 선택을 통해 ㅡ 표현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오늘날 세계적 위상을 생각하면, 이 차이가 어느 쪽에도 해가 되지 않았음은 우리 모두 아는 바다." (12-13p)
여기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반 고흐를 죽인 안부와 헤르만 헤세를 살린 안부였네요. 극적인 운명의 대조가 두 예술가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네요. 서명을 남기지 않은 빈센트의 편지, 이름 없이 건넨 안부들 속에서,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따뜻한 문장 속에서 새로운 감동을 느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