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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살 할머니
이인 지음 / 향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어땠을까... 이 책을 읽다가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네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할머니가 멀리 떠날까봐 조마조마하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있어요. 아흔을 앞두고 돌아가실 때에는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정신은 또렷하셔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더랬죠. 그래서 마지막 순간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실거라고,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라고 그냥 우겨대는 마음이었네요.
이안 작가의 《나의 200살 할머니》는 100살을 넘어 200살을 향해 가는 할머니의 여정을 곁에서 지키는 손주의 따뜻하고도 치열한 돌봄의 기록이네요. 사랑은 돌고 돌아,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던 손자가 어른이 되어, 이제는 거동을 못하는 할머니를 챙기게 되었네요. 저자는 이 책이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한 기록이자, 할머니를 사랑했음을 고백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이야기하네요. 돌봄의 시작은 은혜를 갚는다는 갸륵한 마음이었으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버거움을 호소하고 있네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할머니를 화장실로 모셔가고 새 기저귀로 갈아드리고, 매 끼니를 챙기고, 자잘한 심부름까지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저자는 글을 쓰고 나서야 자신이 할머니를 보살 핀 게아니라 할머니가 자신을 보듬었다는 사실을,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려면 눈물겨운 시간이 필요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네요.
"젊다고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젊을 때는 크게 아픈 데가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급속도로 쇠잔하면서 노화의 고통이 삶을 뒤흔든다. 할머니 역시 넘어지면서 골반을 다쳤고, 다리 힘이 약해지면서 걷지 못하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노후였다. 사람들은 다들 장수를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고통스럽게 오래 사는 건 결코 복일 수 없었다. 나이 든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지리란 희망도 없이 여생을 견디는 건 섬뜩한 형벌일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노화의 형벌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할머니가 바라는 건 얼른 편안해지는 일이었다. 죽으면 모든 게 편안해질 거라고 할머니는 걸핏하면 중얼거렸다. ··· 할머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백하고 싶었던 허물을 내보이는 대신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살아, 죽 한 그릇 딱 잡수시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나는 왜 안 그래'라며 혼잣말을 했다. 죄 타령을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 역시 대역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함께 고통받는 중벌을 하염없이 받는 것 같았다." (217-218p)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를 간병하느라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지친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간병 끝에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거나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네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어떤 노년기를 보낼 것인지, 숙고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할머니를 향한 마음, 그 진심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감동을 주네요.
"거의 100년 전에 아장아장 걸어서 옆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아마 조카랑 비슷했을 것이다. 앙증맞은 조카를 보면 병아리가 떠오르듯 옆집 할아버지는 꼬마 할머니를 보면서 쇠스랑개비가 연상되었으리라. 할머니는 쇠스랑개비였다 쇠스랑개비 같았던 한 사람이 한 세기를 살아 내고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땅으로 돌아간 쇠스랑개비는 새로운 계절에 또다시 쇠스랑개비로 피어날 것이다. ··· 언젠가 그때가 되면 나는 수줍게 웃고 있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건낼 것이다. 기억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에." (289-2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