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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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끔찍한 트라우마는 30년 뒤에도 지울 수 없다고...

네주 시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벌어졌던 일들을 자전적 소설을 통해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네요.

《슬픈 호랑이》는 네주 시노가 침묵을 깨고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네요.

저자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 회고록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억과 폭력의 본질을 분석하고 있어요.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인 저자가 40대가 되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닮은 딸을 보며, 지옥 같았던 과거의 기억과 다시 마주하고, 이를 글로 써내려가며 치유와 연대를 모색했다는 것이 놀랍고 가슴 아프네요.

"호랑이야, 호랑이야, 밝게 타오르는구나, / 깜깜밤중 수풀 속에서 / 어떤 불멸의 손이나 눈이 / 그대의 무시무시한 균형미를 만들 수 있었을까? / (···) 별들이 자기네 무기를 내동댕이쳤을 때 / 그리고 자기네 눈물로 하늘을 적셨을 때 / 그분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미소 지었을까? /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 (242-243p)

윌리엄 블레이크의 「호랑이」 이라는 시에서,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폭력적인 가해자와 자신이 어떻게 같은 흙으로 빚어졌는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유와 악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어요. 호랑이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의 악마적 폭력성을 품은 복합적인 존재인 거예요. 파괴적인 폭력으로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저자는 '슬픈 호랑이'로 형상화하여 그 트라우마를 피하지 않고 집요하게 고찰하고 있네요.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질문을 접한다. 왜? 왜 그런 짓을? 왜 나를? 피해자들은 때로 이런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가해자들과 재면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특히 가해자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난 뒤에 피해자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에 그러하다. 어떤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다시 만나려고, 가해자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쉽지 않은 탐문을 벌이기도 한다. 자기에게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가해자든 멍청이든 사디즘적으로 영리한 자든 대답을 제대로 들려줄 능력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 관점에 대해서, 자신의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동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여러 아이들 중에서 피해자로 선택된 경우에도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설명을 듣는다 한들,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열쇠를 얻지는 못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가해자의 뜻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은 대개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 말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망상 속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특히 그들이 죄인이기 이전에 피해자기도 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246p)

저자는 의붓아버지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라는 '악'에서 도망쳤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니, 트라우마는 지독한 저주가 아닌가 싶어요. 그럼에도 저자가 용기를 냈던 것은 사랑하는 딸을 둔 엄마였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단순히 문학이 고통을 치유해 준다는 낭만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있어요. 문학의 도움을 받아 더 자유로워진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은 아니라고, 고통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들기, 폭력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기는 이내 출구 없는 길이 되고 만다는 거죠. 대신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집요하게 응시하는 글쓰기와 침묵을 깨고 말하는 행위가 구원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네요. 고통과 슬픔은 줄어들지 않고, 세상의 악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악은 도처에 있고, 그걸 무시하거나 잊는 건 선택지가 아닌 것은 분명해요. 그러니 도전하라고, 운명의 줄 위에 올라선 곡예사처럼 비틀거릴 수 있으나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하네요. 엄마로서 당당하게 삶을 버텨내고 있는 그야말로 용감한 호랑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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