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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
김경연 외 지음 / 오월의봄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면 여성의 권리만 확장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네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채용이나 승진, 임금, 안전, 의사결정권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불안한 현실을 성차별로 잘못 해석하고, 극단적인 커뮤니티 문화를 중심으로 혐오 표현을 확산시켜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네요. 페미니즘의 성평등 노력을 남성 역차별로 왜곡하는 것 자체가 뿌리 깊은 가부장적 인식에서 비롯된 차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미워하는 감정을 넘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비하하거나 억압하는 사회 구조적 인식이네요.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근대의 젠더 폭력성에 의해 탄생한 '마녀와 광녀'라는 낙인을 낯설게 바라보며, 이를 역으로 이용해 남성 중심 문법을 해체하려는 여성 비평가들의 에세이 앤솔러지네요. 이 책에는 여성 현실에 대한 비평가의 실존적 목소리를 담은 스무 편의 단평 에세이가 실려 있네요. 부제는 '여성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이며, 이는 억압받아온 여성의 경험을 텍스트 속에서 발굴해낸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수록된 글들 중 일부는 2023년 12월, '근대 합리성의 젠더성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작가회의가 마련한 학술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이라고 하네요.
저자들을 대표하여 정은경 작가는, "이들이 채굴해 놓은 '마녀와 광기'라는 불길한 자리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빈번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끈질기게 경험하는 지점이다. 사실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불안과 위협 속에서 자꾸만 안과 밖의 경계를 생각하며 포기하거나 버티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실패와 버팀에 대한 인지, 그것만으로도 경계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16p)라고 이야기하네요.
여성 스스로 현실을 직시해야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에 실린 글들은 젠더 갈등의 핵심인 가부장적 언어를 해체하고, 일상적인 언어 습관 속에 숨겨진 갈등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네요.
"마녀와 광녀 혹은 병원체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타자의 모습이며,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전개 과정을 거쳐 등장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가부장제가 공모하여 여성의 몸과 마음, 노동을 억압하고 질식시켰다. 이 상황을 조망하는 데 면역 패러다임(의 변화의 추이를 살피는 것)은 일정한 도움을 준다. 근대 면역의 논리는 공동체의 내부에 모종의 무의미의 지점(무의미, 악, 불가지, 비인간, 악마, 혐오스러운 대상, 병원체, 질병 등으로 표시되는)이 있으며, 이 지점이 누수된 타자가 구성적으로 얽혀 있는 지점임을 보여준다. ··· 그러나 이서수, 안보윤, 구병모의 소설 속 여성들이 서 있는 자리는 '교란'하는 자리이자 '질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타자들이 이 폭력적인 공동체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 심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227p)
여성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목소리를 낼 때 예민한 마녀로 낙인찍히는 현상을 다루며, 젠더 갈등이 여성의 목소리를 광기로 치부하려는 남성 중심 사회의 방어 기제임을 보여주네요. 마녀와 광녀를 억압받는 희생자로만 보지 않고, 가부장적 사회의 이성에 균열을 내는 저항의 주체로 재해석하여, 여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강력한 힘으로 연대할 것을 제안하네요. 결국 세상을 향해 발신하는 우리-마녀들의 이야기는 반란의 정치이자 지난한 싸움에서 최후에 승리할 비결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