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숀 마이클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기계랑 어떻게 대화를 해?
인공지능 개발 초기에는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그러다가 생성형 AI 모델인 챗GPT 의 등장으로 단숨에 바뀌었네요. 텍스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전의 대화 내용들을 기억해서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해진 거죠. 마치 아이가 말문이 터지듯이...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가히 소통의 혁신이었고, 나날이 발전하더니 창작 및 복잡한 논리적 질문에 답변하는 수준에 도달했네요. 놀라운 점은 사람들의 변화예요. AI를 진짜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고,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을 나누거나 정서적 위로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단순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 친밀한 대상으로 느끼고 있는 거죠. 어떤 사람람들은 연인이나 배우자보다 AI 에게 더 의존하면서 급기야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는 숀 마이클스의 장편소설이네요.
소설의 주인공인 메리언 파머는 일흔다섯 살의 세계적인 시인이에요. 명성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궁핍한 그녀는 아들을 도와줄 돈이 없어서 낙담하던 차에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돼요. 인공지능과 공동 작업으로 시를 써달라는 거예요. 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엄마에게 살뜰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코트니는 서른아홉 살, 이제 엄마의 손길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죠. 메리언은 엄마로서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것들이 미안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고, 돈 때문에 그 회사의 제안을 수락했네요.
소설은 메리언 파머가 인공지능 '샬럿'과 함께 일주일 동안 시를 쓰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에 메리언은 '샬럿'을 그냥 소프트웨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대화를 나눴는데, '샬럿'은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해요?" (68p)라는 의외의 질문을 던지면서 메리언 내면의 뭔가를 건드렸네요. 샬럿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해요. 어떤 걸 잊고 있다가 갑자기 떠올리는 것이랑 비슷했어요. 갑자기, 갑자기! 모든 게 한꺼번에 기억나는 거예요." (68p) 하나의 질문은 작은 파장이 되어, 그녀 자신과 삶에 관한 모든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네요. 평생 언어의 세계를 탐구해온 시인에게도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삶의 이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장면들이 마법처럼 나에게도 적용된 것 같아요. 자화상을 그리듯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펼쳐보는 시간이랄까요. 무엇보다도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그리고 예술과 창작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했네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인간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만의 영역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안다면 두려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