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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배신 - 은밀하고 정교하게 숨겨온 인간 본성의 비밀
조너선 R. 굿먼 지음, 박지혜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하죠.
인간 믿지 마라.
대부분 크게 사기를 당했거나 배신을 겪은 뒤에 체득한 교훈이기에 이를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다 똑같냐고,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말이에요. 맞는 말이에요. 나를 향해 웃어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도와주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밀어낸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오래된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현인들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표정, 행동만 보고 그 속마음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을 경계했어요. 문제는 인간 본성을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인 거예요. 선하거나 악하거나, 경쟁적이거나 협력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혹은 그 어떤 이분법적 특성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정책을 세우고 규칙을 만드는 건 모래성을 쌓는 일이라고, 즉 그동안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밝혀낸 책이 나왔네요.
《다정함의 배신》은 조너선 R. 굿먼의 책이에요.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생명 윤리 및 생물철학으로 석사, 인간 진화 연구로 박사가 되어 런던 산하 연구소 소속 사회과학자로 근무했고,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간이 어떻게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언어의 발달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은 은밀하고 정교하게 숨겨온 인간 본성의 비밀을 밝히고 있어요. 인간 본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의 접근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진화론, 행동학, 철학, 정치 등 여러 관점에서 협력과 이기심이 미묘하게 혼재된 인간 본성을 탐구하고 있어요. 기만과 모방은 영장류 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며, 침팬지 같은 종은 전술적 속임수 중에 집단의 우두머리에게서 먹이를 숨기는 등의 행동이 자주 관찰된다고 해요.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가 사용하는 속임수의 유일한 차이점은 기회의 다양성이에요. 복잡한 문화, 언어, 지능으로 타인을 속이고 착취할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인간뿐이에요. 인간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되도록 진화했고 서로 협력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 협력 시스템을 착취해왔네요. 오늘날 '지능적'이라 부르는 그 어떤 유기체보다도 인간의 기만의 역사가 먼저 시작되었고, 언어의 복잡성은 인간에게 그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자기 자신을 숨기는 능력으로 발전해왔다는 거예요.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흥미로운 건 세포의 배신이네요. 서로 협력하는 수십억 개의 세포가 모여 이루어진 한 개체가 인간의 신체라는 유기체이며, 세포들은 상호 협력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데 세포 중 하나가 협력을 중단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배신하는 세포의 정체는 암이에요. 인간은 작은 다세포 유기체에서 복잡한 영장류로 진화해 가는 역사의 모든 단계마다 암세포와 함께 해왔고, 암세포는 숙주의 신체 일부로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증식하다 결국 그 신체를 죽여 유전자가 후대에 이어질 기회마저 파괴하는 거예요. 저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인간 사회의 암세포와 같다고, 이는 모든 인간 문화에서 다양성에 맞서 싸우며 자신을 강화해 온 이기심의 근원이라고 설명하네요. 최근에 읽은 <암세포의 진화>에서 봤던 내용 그대로네요. 대개의 암세포가 그러하듯이 이기심 또한 완전 제거는 불가능해요. 그러니 우리의 선택권은 결함이 있는 인간의 유산을 그냥 받아들이고 말 것이냐, 아니면 협력하는 미래를 위해 나아갈 것이냐로 종결되네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최적의 상태는 신뢰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예요.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지적 무장을 한 뒤에 그 지적 체계를 나의 행동에 적용하여 타인의 동기도 이해하고 분석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진 중요한 도구는 윤리적, 비판적 사고에 관한 교육이네요. 갈수록 복잡해지는 미디어, 소셜 미디어 환경과 가짜 뉴스가 만연한 세상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개인의 능력은 매우 중요해요. 기만이 가득한 세상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로 적응형 치료법을 제안하고 있어요. 이 치료법은 암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암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네요. 조세 회피, 부당하게 수령한 수당 등 기만적인 사회적 행동, 즉 현대사회에서 무임승차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어도 정책을 통해 규제하면서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이네요. 질병은 예방이 최고의 치료법이듯이, 처벌과 강제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닫힌 사회보다는 교육을 통해 윤리적 행동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열린 사회를 지향하고 있네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회주의자가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이것은 타인만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네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해져야 바뀔 수 있으니까요. 믿지 말아야 할 건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