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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연재 ㅣ 매드앤미러 6
이종호.홍지운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오늘 밤 달이 떴네요.
똑같은 달이지만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할 수도 있고, 으시시한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어요. 만약 하나의 설정으로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떨까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라면 장르 불문, 다 좋아요.
국내 대표 호러 전문 창작 집단인 '매드클럽'과 환상문학 웹진 '거울'이 함께하는 매드앤미러 프로젝트는 같은 한 줄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텍스티 시리즈네요. 독특한 설정의 창작물답게 책표지도 예사롭지 않아요. 겉표지를 벗겨내면 안쪽에 컬러링북 도안처럼 밑그림이 있어서 원하는 방식으로 채색할 수 있어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숨어 있어요. 매드앤미러 시리즈의 모든 책에는 두 가지 미션이 있는데, 작가들은 잘 숨겨야 하고, 독자들을 잘 찾아내면 돼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가 웹툰이 되어 연재되고 있다." (4p)
두 작가에게 제공된 한 줄의 문장이네요.
《익명연재 》에는 두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요.
이종호 작가님의 <스며드는 것들>은 본격 공포 장르라면, 홍지운 작가님의 <이계전기 연재 중단을 요청합니다>는 판타지 장르예요.
우연이겠지만 <스며드는 것들>을 읽다가 목부터 등까지 서늘한 기운을 느껴서 기분이 묘했어요. 설마 여기에도?
<스며드는 것들>에서 주인공 심우진은 웹툰 데뷔작 <붕괴>가 흥행하면서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과 사랑하는 미영과도 결혼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플랫폼 담당 편집자는 차기작인 <오후의 살인>에 대해 연재를 못하겠다고 통보했어요. 행운의 사나이가 하루아침에 불행의 나락으로 빠진 상황인 거죠. 그때 2년간 누가 사는지도 몰랐던 옆집 사람이 동창생 수희라는 걸 알게 됐고, 그녀의 부탁으로 고장난 노트북을 봐주다가 <빙의>라는 시나리오 원고를 읽게 됐어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39p)이라고 표현했지만, 애초에 나쁜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면 훔치지 않았을 거예요.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우진이 저지른 모든 일들을 누군가 웹툰에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이 벌인 걸까요. 붕괴, 빙의, 스며드는 것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요.
<이계전기 연재 중단을 요청합니다>는 평범한 열일곱 살 고등학생 이태양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트럭에 치여 정신을 잃은 뒤, 이세계-칼드레아 대륙에서 용사로서의 모험을 하고, 5년 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어요. 이세계에선 마왕을 물리친 영웅이지만 현실에선 고등학교 시절을 통째로 날린 고교 중퇴자, 자신의 검술과 마법은 딱히 쓸 일이 없어서 상하차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금요일마다 동료 파룩과 쌈바치킨 사장님과 치킨을 뜯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근데 쌈바치킨 사장님이 즐겨보는 웹툰 <이계전기>는 바로 태양이 겪은 이세계-칼드레아 대륙의 모험 이야기인 거예요. 웃음이 터진 부분은 <이계전기> 사인회에서 작가 아오암을 만나는 장면이네요. 작가의 정체는 바로 마왕, 뿔이 이마에 하나, 옆에 둘 돋아난 붉은 머리 여성의 모습 그대로 인간 세계를 활보하고 있다니 신기했네요. 마왕은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웹툰으로 그렸고, 굉장히 인기를 누리는 웹툰 작가로 살고 있네요. 재미있는 건 영웅이었던 태양을 못생기고 어리석은 악역으로 묘사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마왕이 태양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교양 있어 보이긴 해요. 웹툰 내용도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이슈를 녹여냈다는 점에서 수준급이에요. 혐오 발언을 내뱉는 국회의원 황윤평과 여론 조작 업체의 비리와 같은 요소들은 이 소설을 판타지에서 풍자까지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있어요. 이세계 마왕의 활약으로 누가 진짜 악당인가를 되묻게 만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