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정배급회사 ㅣ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7
호시 신이치 지음, 김진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짧지만 강렬한 그 맛을 잊지 못했네요.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그 느낌이 새로웠네요. 마치 글로 만나는 쇼츠 같달까요.
《요정배급회사》는 호시 신이치 작가님의 대표작 서른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호시 신이치식 쇼트-쇼트, 초단편 소설은 신기하게도 짧은 분량 안에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어요. 일단 시공간을 초월하여 놀라운 상상력을 펼쳐내고 있어요. 요정배급회사에서 늙은 사원의 이야기를 보면서 살짝 소름 돋았던 건 요정이 마치 인간에게 아부를 하는 AI 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는 요정의 존재가 외롭거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위험할 수 있어요. 입에 달다고 사탕만 먹는다면 치아가 다 썩는 것처럼 달콤한 말도 한계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늙은 사원은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소실된 상태라서 요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입만 뻥긋대는 요정을 보면서 전혀 위로받지 못하기 때문에 요정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작용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요정 때문에 부부 사이가 갈라지고, 사람들은 점점 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요정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어요. 늙은 사원은 요정배급회사에서 일하면서 요정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어요. 요정보다 더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는 존재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요정이라는 봉투에 둘러싸여서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결혼하는 커플이 줄면서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어요. 학자들에게 의뢰한, 요정이 이로운가 해로운가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늙은 사원은 이미 예상하고 있네요. 최근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일부 이용자가 챗봇에 장기간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AI 불륜'이 현실 부부 관계를 허물어뜨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하네요. 어떤 사람은 AI 동반자와 깊이 교감하다가 스스로 정서적 불륜이라고 판단해 연인과의 관계를 끝낸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이미 AI에게 남들과는 나누지 못하는 속 깊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도 요정배급회사와 같은 상황이 된 것 같아서 무서워지네요. 우리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호시 신이치의 소설은 일종의 경고인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이란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불만과 고민을 안고 있으며 고독에 몸부림치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11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