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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유자는 없어.
무슨 유자를 말하는 거지?
책 표지에 노란 유자 하나가 보이는데, 왜 없다고 했을까요?
《유자는 없어》 김지현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이네요.
거제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생 유지안의 은밀한 속마음을 담아낸 이야기예요.
지안이네는 부모님이 '유자 빵집'을 운영하셔서, 친구들이 지안이라는 이름 대신 '유자'라고 부르네요. 집 근처 중학교를 다녀서 늘 친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았는데, 고등학교는 뿔뿔이 흩어진 데다가 유자가 다니는 학교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통학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낯설고 먼 학교에 가는 게 싫지만 내색하지 않는 유자, 근데 절친 수영이도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 외지인 언니에게 털어놓은 비밀을 유자한테는 숨기는 것도,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울적한 티를 내지 않다가 둘이 있으면 금방 풀이 죽어 버리는 것도 다 이해하기 어려워요. 아참, 동네 외지인은 혜현 언니예요. 비어 있던 순댕이네 장평 아줌마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아줌마와는 친척 사이래요. 혜현 언니는 유자와 수영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해요. 이 장면에서 피식 웃음이 나더라고요. 궁금해서 묻는 건데 궁금한 이유를 되묻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서 말이죠.
"요즘은 문과, 이과 다 한 반에서 수업 듣는다며?"
수영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하고 중얼거리더니 혜현 언니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야자는? 야간 자율 학습 있잖아."
"신청자만 해요."
이번에는 나만 대답했다.
혜현 언니는 우리에게 요즘에는 교복을 안 입어도 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들은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톡을 쓰지 않고 인스타나 페북 디엠으로 얘기하는 게 맞는지 (그렇다기엔 나만 해도 인스타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는 것들을 자꾸 물었다. 주로 SNS에서 주워들은 얘기들 같았다.
"그런 게 왜 궁금해요?"
한참 듣다 궁금해져 물었다. 사투리 억양 때문에 따지는 말로 들렸으려나? 속으로 아차 했는데 막상 혜현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조카들이 있긴 한데 아직 애기들이거든. 내 주변에 딱 너희 또래 애들이 없어. 그래서 궁금해. 요즘 애들은 어떻게 지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36-37p)
거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자는 익숙한 동네 풍경이 지겨워졌어요. 새로울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근데 같은 반 전학생 김해민은 흥미롭게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기까지 하네요. 김해민은 중학교 때 전학을 와서 별명이 전학생인데 고등학교에 와서도 친구들이 계속 이름 대신 '전학생'이라고 부르네요. 유자처럼... 유자, 지안이를 부르는 호칭이라서 의식하지 못했는데 우리나라 유자가 거제시에서 재배되고 있었다니, 겨울만 되면 유자청을 자주 먹으면서도 생산지에는 관심이 없었네요. 남해안 지역의 풍부한 일조량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유자의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고, 특유의 산미와 청량한 향을 깊게 응축시킨다고 하네요. 소설에선 과일 유자는 안 나오고 인간 유자, 지안의 이야기만 나오지만 어쩐지 지안의 모습이 바닷바람을 버텨내고 자라는 유자를 닮았네요. '지방 청소년'이라는 말이 제겐 좀 어색한 것이 서울과 지방을 갈라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데, 실제로 지방에 살고 있는 십대들에겐 그들만의 고민이 있구나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소설 제목, '유자는'과 '없어' 사이에 괄호( ) 를 쓰고, 그 안에 '좌절','포기'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넣고 싶네요. 노랗고 단단한 유자껍질마냥 멋지게 성장하기를 응원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