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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환의 논어 공부 노트 : 상 - 한문과 고전의 지혜를 함께 한글 세대를 위한 논어 해설 ㅣ 김봉환의 논어 공부 노트
김봉환 엮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논어를 왜 배워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논어 공부가 필요하네요.
직접 그 안에 담긴 뜻을 알아야 '배움'의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김봉환의 논어 공부노트》는 한문과 고전의 지혜를 함께 전하는 한글 세대를 위한 논어 해설서라고 하네요. 이 책을 엮은이는 전문적인 한문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법률 실무가인데 젊었을 때부터 논어에 관심이 있어서 은퇴 후 혼자 공부하며 그 요점을 정리하다 보니 손자들에게 남겨 주고 싶어서 이렇듯 책으로 펴냈다고 하네요. 그래서 <논어>가 아닌 <논어 공부노트>라고 명명했고, 단순히 논어 원문 해석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알게 된 배경지식들을 첨부하여 이해를 돕고 있네요. 논어의 해석은 원칙적으로 주자(주희)의 <논어집주>의 풀이를 따르기 때문에 첫 장에 <논어집주> 서설이 나와 있네요.
"<사기>의 <공자세가>에 기록되기를, 공자는 이름이 '구'이고, 자는 '중니'이다. 그 선조는 송나라 사람이며, 아버지는 숙량흘, 어머니는 안(안징재) 씨이다. 노나라 양공 22년(B.C. 551)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노나라) 창평현 추읍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어울려 놀 때 항상 제기를 진설하고 예를 행하는 용모를 베풀었다. 장성하여 창고관리자가 되어서는 셈이 공평하였다.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물었으며, 돌아오자 제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19-21p)
중국 남송 시대의 유학자 주희가 논어에 주석을 달아 저술한 <논어집주>를 보면, 공자의 생애와 논어 관련된 주요한 내용들을 알 수 있어요.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당시 사람들에게 응답한 말과 제자들이 공자로부터 들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각기 기록해 둔 것을 서로 모으고 의론하여 펴냈다고 하여 '논할 논, 말씀 어', 즉 논어라고 칭하게 된 거예요. 초기에는 명칭이 '전', '기', '논', '어' 등으로 다양한데 '논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전한 6대 경제부터 무제 기간이며, 후한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대요. 주자는 논어 외에도 대학, 맹자, 중용에도 주석을 달아서 <사서집주>를 펴내면서, 유교의 기본인 '사서'의 개념을 확립했고, 중국 원나라 때부터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과거시험의 지정서가 되었대요.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논어집주>를 논어 해석의 금과옥조로 삼았고, 다산 정약용은 <논어고금주>를 통해 주자의 해석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증, 재해석한 논어 주석서를 집필했네요. 현재 논어는 모두 20편, 482장, 600여 문자, 15,000여 자로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앞의 10편을 상론, 뒤의 10편을 하론으로 구분하여 앞의 10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책도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상권에서는 제1편 '학이'부터 제10편'향당'을 다루고 있는데, "정공 14년 을사년(B.C. 496) 공자 나이 56세 때 (대사구로서) 제상의 일을 대행하여, (노나라의 대부) 소정묘를 죽이고 국정에 참여하여 들으니 3개월 만에 크게 다르려졌다." (24p)라는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해설을 보면, 공자는 소정묘를 처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어요. 사람에게 악한 것이 다섯 있는데, 마음이 만사에 통달하면서도 음험한 것이 하나이고, 행실이 편벽되고 완고한 것이 둘, 말이 거짓되고 잘하는 것이 셋, 추한 것을 기록하며 지식만 많은 것이 넷, 그릇된 일을 일삼아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다섯이며, 사람이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더라도 처형을 면할 수 없는데, 소정묘는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는 거예요. 공자가 노나라를 다스린지 3개월이 지나자, 장사꾼은 폭리를 탐하지 않게 되고, 문란한 풍기도 사라졌으며, 나라 안의 치안의 확보되어 날로 융성해졌대요. 그대로 두면 노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될 것을 우려한 제나라가 미녀들을 뽑아 선물하자, 정공은 주색에 빠져 나랏일을 내팽개쳤고, 이에 공자는 노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떠나는데 주유하며 가는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 등용되어 자기의 도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네요. 공자 나이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왔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고 여러 책들을 집필했다고 전해지네요. 이때 제자가 대략 3,000명이었고, 여섯 가지 재주를 통달한 이가 72명이었다고 해요. 논어의 저자에 대한 정설은 없지만 어느 한 시기에 편찬되었다기보다 몇 차례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하네요.
정자가 말하기를 "논어를 읽음에, 읽은 뒤에도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도 있고, 읽은 뒤에 그중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읽은 뒤에 논어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읽은 뒤에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사람도 있다"면서, "오늘날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만일 논어를 읽음에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이요 다 읽고 난 뒤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 "나는 17,8세 때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그 뜻을 깨달았지만, 읽기를 더욱 오래 함에 의미심장함을 깨달았다." (31-32p)라고 했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네요. 이른 나이에 그 뜻을 헤아린 정자도 평생 읽으며 인생의 지혜와 해답을 얻었듯이 우리 역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배워야 해요.
제6장 옹아편에서 정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음'을 '중'이라 이르고, '바뀌지 않음'을 '용'이라 이른다. '중'은 천하의 바른 도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 세상의 교화가 쇠퇴하면서더부터 사람들이 (중용의 도) 실천함에 분발하지 않아 이 덕을 가진 사람이 적은지가 오래되었다." (229p), "무릇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부터 (거기에) 서게 하고, 자기가 도달(성취)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부터 도달(성취)하게 해 준다. 가까운 데서 취하여 깨달을 수 있다면 가히 '인'을 행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231p)라고 했는데, 이것이 유교의 핵심 덕목인 '인 仁'과 '성 聖'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라고 하네요. '인'은 자기보다 먼저 남을 이루어주는 것이고, '성'은 거기서 더 나아가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므로 공자는 '성'을 '인'보다 더 높은 가치로 보았네요. 또한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과, 의로움을 듣고도 옮기지(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않은 점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이다." (238p)라는 공자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논어를 읽고도 읽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