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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12월 16일,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오스틴의 열렬한 팬들을 위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어요. 특별히 이 책은 초판 발행일까지 맞추었네요. 2025년 12월 16일.
《디어 제인 오스틴》은 김선형 번역가의 제인 오스틴 헌정 에세이네요.
세상에는 정말 제인 오스틴의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문득 왜 나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스틴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엄청나게 빠져들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 다시 읽기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궁금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네요. 저자는 우리가 몰랐던 제인 오스틴의 삶과 작품 세계를 알려주는 동시에 느리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네요.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과 마지막 소설은 말하지 못한 마음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이야기, 침묵하던 생각에 드디어 목소리가 생기는 이야기입니다.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와 『설득』의 앤은 누구보다 지혜롭고 누구보다 사무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여러 이유로,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에 마음을 드러낼 길이 막혀 있어요. 사회적 발화는 언제 어디서나 권위와 규범의 문제이지요. ... 엘리너와 앤의 꿈은 보다 야심차고, 그들의 실천은 보다 금욕적입니다. 뉘앙스가 풍부한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세계에 새기고자 분투하되, 그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끝까지 세계를 관용하고 용서하고 연민하고, 사랑할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요. ... 현명한 제인 오스틴과 그가 창조한 아름다운 사람들은 오랜 시간 고립과 고독과 침묵에 맞서 절망도 원망도 없이 부단히 분투하며, 끝내 목소리를 낼 자격을 쟁취하고 찬란하게 발화하고 발화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기어코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고 뒤늦을지언정 만개합니다." (59-60p)
저자가 제인 오스틴의 전작을 번역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번역가로 살 수 없겠다고 절망하던 때였다고 해요. 건강상의 이유였는데 좌절과 절망에서 허우적대던 그 시기에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과 『설득』을 다시 읽었고, 그녀의 소설이 로맨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의 기록이자 희망의 전갈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제인 오스틴은 언제나 고립되어 있거나 깊은 절망과 상실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작 번역이라는 꿈이 현실화된 것은 이 년 전의 일이었대요. 그러니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전작을 다시 읽기 위한 준비 단계, 친절한 안내서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한 번역가가 사랑하는 작가의 모든 문장을 덜컹거리며 통과하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속의 사건들을 소상히 얘기해보고 싶었다" (280p)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사랑하는 텍스트 속 인물들과 교감하는 저자의 진심이 느낄 수 있었네요. 인공지능이 단숨에 번역해버리는 시대에 번역가들은 어떻게 될까, 다른 건 몰라도 문학 번역은 전문 번역가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글쓰기가 제게 번역이라면 제인 오스틴에게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전부 번역하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 저는 머릿속으로 이미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사람만이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문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람 번역가라서 자신이 번역하는 작품과 작가를 사랑할 수 있고, 작가와 작품의 세계를 알고자 고군분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얻은 앎을 사람인 당신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넬 수 있는 것입니다." (279-281p) 라는 말에 공감하네요. 사람이 사람으로 읽고 사람에게 다가서는 일을 어떻게 기계에게 맡길 수 있겠어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문학 번역처럼, 우리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번역하는 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