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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건 아니고 일시정지
이재문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싫었어요.
오죽 힘들고 괴로우면 이런 말이 유행할까 싶다가도, 자포자기를 선언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속상했네요. 나라고 뭐 다를까, 남들에게 내세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망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다음 생이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이번 생을 제대로 살지 못해 놓고 다음 생을 기대하는 건 무리니까요. 근데 이 소설처럼 환생 학교가 있다면, 죽기 직전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죽은 건 아니고 일시 정지》는 이재문 작가님의 힐링 판타지 소설이네요.
이 소설은 박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스물아홉의 청년 유일해가 치킨 조각이 목에 걸려 이제 죽나보다 하는 순간, 미스터리한 남자에게 이끌려 환생 학교를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환생 학교의 교장은 염라, 그는 일해에게 닭뼈가 목에 걸려 기도가 폐쇄된 것은 맞지만 희한하게도 다시 살아났으니 이승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거예요. 환생 학교의 입학 조건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것, 이곳에서는 모든 죽음이 일시 정지 상태이며, 입학한 사람들은 네 번의 수업 중 세 번의 수업을 통과해야 환생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일해는 환생 학교까지 와서도 입학을 못하는 신세라니, 재수 없음의 끝판왕이랄까요. 딱히 열정이나 의지가 없는 일해지만 이 순간만큼은 간절하게 애원했고, 그 마음이 통했는지 염라는 근로 장학생으로 일한다는 조건으로 환생 학교 입학을 허가했네요. 뭐든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염라가 몸소 알려주네요. 앞으로 일해가 할 일은 모둠 학생들이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이 임무를 실패하면 환생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물론이고, 곧장 지옥에 가게 된다는 거예요. 과연 일해는 환생 학교의 동기생들을 무사히 졸업시킬 수 있을까요. 꼬여 버린 인생,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해 주저앉아 버린 사람에겐 주변이 보이질 않는 법이죠. 그저 혼자만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안 좋은 생각들에 빠지게 되고, 자신보다 더 크고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고도 묵묵히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걸 보질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좁디 좁은 방에 갇힌 듯,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벗어날 수 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다음, 신기하고 놀라운 환생 학교에서 펼쳐지는 저마다의 인생 극장을 관람하고 나니,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였구나 싶더라고요. 다른 이들의 삶을 통해 소중한 인생 수업을 받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