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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월드
플레이어 지음 / PAGE NOT FOUND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NPC 가 뭐지?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걸 보니 요즘 유행하는 게임 용어인가 싶었죠.
처음엔 구경꾼 모드였는데 점점 깨닫게 됐네요. 앗, 이건 내 얘기잖아...
《NPC 월드》의 저자는 익명의 플레이어, 출판사는 PAGE NOT FOUND라고 하네요.
명확하게 용어 설명을 하자면, NPC 는 'Non - Player Character'의 줄임말로, 게임이나 이야기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해요. 최근에는 현실에서 자기 주도적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부를 때 사용된다고 하네요.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NPC 월드가 되어버린 2025년 대한민국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해부해보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크게 4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우리가 NPC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NPC, 방관과 순응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3부에서는 NPC 탈출기를 알려주며, 4부에서는 NPC였던 저자의 고백이자 NPC 탈출 선언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만들어가야 할 시스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요. 1부를 읽을 때는 긴가민가, 약간의 자기 부정을 하다가, 스마트폰에서 띵! 알림음과 함께 '이번 주 기기 사용 시간은 O시간 O분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네요. 근래에 부쩍 사용 시간이 늘어난 데에는 SNS 영상, 숏폼 시청 때문이니까요. 우연히 클릭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거예요. 자동화와 알고리즘, 어느새 편리함에 익숙해져 '수동'으로 살아가고 있었네요. 저자는 지금이라도 함께 알아보고, 바꿔가며 다시금 명명하자고 이야기하네요. 지금 사라지는 것이 무엇이며, 왜 사라지는지, 무엇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지 이름 붙여야, 명확한 문제 인식이 가능하고, 훈련을 통해 되돌릴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할 일은 선택하는 거예요. 짧게 살 것인가, 깊게 살 것인가. 생각 없는 좀비로 살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삶의 주도권을 함부로 내어주지 말자는 거예요. NPC처럼 짜여진 대로, 즉각적 보상에 취해 세상의 흐름을 외면하지 말고, 이제는 위험을 마주보자는 거예요. 플레이어들이여, NPC를 탈출하라, 아직 늦지 않았다!
숏폼 시대,
긴 호흡의 작업이 사라지는 이유
: 영상의 길이가 짧다는 것은 그저 시간 없는 사용자들을 위한 친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사고 단위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패치 양식에 가깝다. 숏폼은 사건을 순간으로 쪼갠다. 잘라진 순간은 이유나 문맥을 요구하지 않는다. 감정과 반응만 요구한다. 편집은 영상의 앞뒤를 지우고 결과적으로 나온 자극만 남는다. 자극은 강할수록 좋다. 강한 자극이 공유가 쉽다. 공유가 쉬운 것이 곧 잘 팔린다. 팔리는 편집이 표준이 되면, 느리고 투박한 것들이 전면에서 사라진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숏폼만 남는 동안 사람들 역시 남는 게 없다. 보는 데는 성공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자라지 않는 사고는 다음에도 짧은 것만 찾는다. 짧은 것의 축적은 깊이가 아니라 속도의 훈련이 된다. 영상을 잘 본다는 게 무엇인가? 숏폼을 많이 보고, 숙달된다면 그저 숏폼을 빨리, 많이 보는 게 전부다. 이처럼 속도가 기준이 되면, 느리게 읽고 느끼도록 설계된 것들, 긴 글과 장기적인 내용들은 마치 무능처럼 보인다. 무능으로 보이는 것은 곧 삭제된다. 이렇게 긴 호흡의 작업이 우리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 숏폼이 지배할 때 기억은 방식부터 달라진다. 뇌는 연결을 먹고 자란다. 연결은 시간의 다리를 건너며 생긴다. 그러나 숏폼은 다리를 불태운다. 전후 맥락 대신 "직전 영상"으로 축소되고, 원인은 "느낌"으로 대체된다. 감정이 늘면 세계는 단순해진다. 단순한 세계에서는 강한 단정이 이긴다. "저쪽이 문제다." "이게 답이다." "안 바뀐다." 판단의 언어가 이렇게 굳을수록 반박은 방해물로 느껴지고, 반대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분위기 파괴자로 낙인찍힌다. 분위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대화는 멈춘다. 멈춘 대화의 빈자리를 또 다른 짧은 것이 메운다. 메우는 동안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현실은 다시 짧은 분노를 낳는다. 분노가 팔리고, 팔린 분노가 다음 편집을 부른다. 대화가 멈추고, 숏츠를 보는 동안, 그런 현실 자체가 더 많은 것들을 불러일으킨다. ... 긴 문서, 긴 회의, 긴 관계가 통증처럼 다가온다. 당장 30분짜리 영상은커녕 3분짜리 영상도 지겨워서 다음 영상이나 추천 영상탭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게 우리다. 이런 통증 앞에서 사람은 합리적으로 회피한다. 회피가 누적되면 장기 프로젝트는 늘 내일이고, 내일의 나는 늘 피곤하다. 피곤한 나는 오늘의 나에게 빚을 진다. 이 빚이 바로 삶의 부채다. 부채가 쌓이면 중요한 것을 붙잡을 힘이 사라진다. 힘이 없으면 다시 짧은 것을 찾는다. 이렇게 시스템은 자가증폭한다. (69-7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