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504p)
《낯선 편지》는 이머전 클락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네요.
이 소설은 마음 깊숙히 묻어뒀던 상처들을 꺼내는 이야기네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빠, 나 몰라라 외면하는 오빠, 남은 사람은 카라였기에 아버지를 돌보게 되네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물건이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추억의 물건들을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간 카라는 구석에 놓인 상자 하나를 발견하는데, 그 안에는 든 것은 엽서였어요.
"내 사랑하는 아가들.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날 용서해주렴." (69p) 라는 똑같은 내용의 엽서가 수백 장이 들어 있는 거예요. 엄마는 1987년 2월에 돌아가셨는데, 엽서를 연도순으로 정리하니 1987년 3월부터 2002년 7월까지, 발신인도 없고 단서라고는 우편 소인뿐이지만 이런 엽서를 보낼 만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절대 보낼 수 없는 단 한 사람만 제외한다면 말이에요.
어릴 적 남매는 집안에서 놀다가 다락방에 올라갔고, 아빠는 거의 광기를 보이며 손찌검을 했고 다락방을 자물쇠로 채워버렸어요.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그 다락방에서 발견된 의문의 엽서들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 도대체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기억을 잃어가는 아빠와 그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쓰는 딸을 보면서 안타깝고 슬펐네요. 작년 추석에 가족끼리 밤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나눈 기억은 있지만 그날은 좀 특별했네요.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이 아빠였으니까, 이야기의 흐름이 뜻밖에도 아빠의 과거로 이어져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젊은 날의 아빠를, 나 홀로 만날 수 있었네요. 아빠를, 나의 아빠라는 존재 외에 한 사람으로서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올라와서 묘했네요. 어릴 때 살던 집에도 다락방이 있었어요.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곳이라서 아이들 입장에선 재미있는 놀이터였죠. 그곳에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물건들과 그 안에 추억들을 들춰보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 같아요. 과거의 일이 누군가에겐 잊혀지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각인되기도 한다는 걸, 중요한 건 진실을 덮어둔 채 오늘을 살아가긴 힘들다는 거예요. 다락방의 엽서, 그 낯선 편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카라와 마이클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과거의 상처가 잘 아물어야 단단하게 행복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