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말고 남미, 혼자 떠난 120일
송경화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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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는 이들을 보면 신기해요.

어디든 여행을 가려고 해도 준비만 한세월, 여태 떠나지 못한 사람인지라 항상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끌리네요. 우연히 마추픽추 여행 영상을 본 뒤로는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가는 길을 찾아보니 쉽게 가볼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더라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혼자서 남미를 네 달 동안 여행한 사람이 있었네요.

《유럽 말고 남미, 혼자 떠난 120일》은 송경화님의 여행 에세이네요. 저자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서 여행을 가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더위를 싫어해서 여름방학이면 늘 북유럽이나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책을 냈는데, 남미를 여행하고 쓴 책과 남미 작가들의 책을 거의 빠짐없이 읽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서 ,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남미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점으로 찍어 일정을 짰더니 여행 기간이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나게 된 거래요. 일단 남미의 여름에 해당하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떠나야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할 수 있고 물이 가득 찬 우유니 소금 사막도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우기인 2월에는 페루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 트레일을 한 달 동안 폐쇄한다고 하니, 남미 여행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건 계절 이슈인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나기 전 나만의 리스트, '이건 꼭 가봐야 해!'라는 걸 정해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저자는 3년 전에 다녀온 이과수 폭포를 다시 일정에 넣은 건 브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에서 폰을 도난당해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아쉬운 때문이라고, 여행에서 인증샷은 포기할 수 없잖아요. 요즘은 여행 유튜버들뿐 아니라 일반 여행자들도 촬영 장비를 갖춰 영상을 찍는 경우가 많아져서, 사진은 기본이고, 영상까지 더해지면 최고의 여행 기록이 될 것 같아요. 역시나 이 책에서도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네요. 여행에 관한 정보는 남미 대륙 지도에 저자가 갔던 곳을 표시한 정도인데, 딱 그만큼의 정보가 적당한 것 같아요. 제가 궁금한 건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여행자의 생생한 경험담이거든요.


"우연히 성당에 갔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언덕 위로 성당이 보여 무작정 올라갔더니 마을에 비해 큰 규모의 성당과 멋진 광장이 있었다.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성가 소리가 들렸다. ...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누군가 다가와 라파스에서 온 카를로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성서를 꺼냈다. 멀리서 보고, 동양에서 혼자 여행 온 나를 사연 많은 여자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가 말했다. '넓은 집도, 비싼 차도 하나도 안 중요해요. 영혼이 중요해요.' 당황한 나는 맞다면서 내가 운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왜 울었을까. 아마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을 것이다. 나처럼 이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눈물일 수도 있다. 이제는 안다. 그 눈물은 한편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아, 아버지가 보고 싶다." (192p)


멋진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고, 어쩐지 저자의 눈물이 가진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아요. 집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떠나기 전날 밤에 모든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오니 어둑어둑한 부엌에 헤르만 할아버지께서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 앉아계신다. 할아버지께서는 혼자 되고 나서 이곳에서 5년간 임대 계약을 맺어서 살고 계신다는데, 칠레 북부가 고향이고 서부에서도 살았지만 여기가 가장 좋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파트리시아 여사님께서 이 밤중에 또 오셨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 조식을 가지고 왔다. 보통은 고객이 사정이 있어 조식을 못 먹으면 끝인데, 이래서 발파라이소를 잊을 수가 없다." (251p)


저자는 남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따스한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위험한 여행지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싹 잊게 만드는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저자의 여행은 힘들지만 행복한 여정이었다는 것, 그 모든 기억과 추억은 여행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네요. 호기심은 많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선뜻 떠나지 못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저자의 여행을 보면서 위험하다고 소문이 난 남미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건 모두 좋은 사람들 덕분인 것 같아요. 웃는 얼굴의 여행자를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행복한 여행자의 뜨거운 여행기였네요.


"이 책에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여행기를 쓰는 원칙이기도 하니까.

··· 혼자서 긴 시간 여행하면 외롭거나 힘들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트레킹을 할 때, 무거운 짐을 주로 남자가 메고 가는 커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외로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대도시 여행에서는 외로운 시란들이 많았다. 최초의 자유여행으로 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살던 집 방명록에, '집에 가고 싶다'라고 쓴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대도시들은 어디나 비슷한 면모가 많아 지루하기 쉽고 사람들이 서로 경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외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미는 하나의 대륙이다. 남미 여행은 국경을 수도 없이 통과해야 하고 도시마다 특색이 있어 늘 긴장하고 매일 새로운 상황과 맞닥뜨리니 지루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씩 성취할 때마다 희열이 넘쳐흘렀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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