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 하·화도편 - 춤 하나로 세상의 보물이 된 남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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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지난 달, 이순재 배우님이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평생 성실하게 연기를 해온 배우로서, 지난해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별 연극을 선보인 그는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사망 직전에도 "연기는 평생 해도 끝이 없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셨대요. 매 작품마다 혼을 담아내는 자세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던 배우였기에 마지막까지 크나큰 감동을 남기고 가셨네요. 그 여운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배우님을 떠올리게 되었네요.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국보》 하권에서는 10년 만에 돌아온 오사카 집으로 돌아온 슌스케의 이야기로 시작되네요.

10년 전, 철부지 도련님인 줄 알았던 슌스케는 하루에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어요.

"난 말이지, 도망치는 게 아냐. ······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 (13p)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슌스케와 그의 곁을 지켜준 하루에는 순탄하지 삶을 살아왔고, 드디어 복귀 무대를 서게 되었네요. 같은 달에 같은 작품을 각기 다른 무대에서 보여주게 된 슌스케와 키쿠오, 이건 모두 대중들이 좋아하는 양자 대결 구도의 기획이었네요. 어쩐지 운명의 라이벌 관계 같은 느낌이었는데 점차 가부키에 푹 빠져 있는 두 사람의 열정 앞에서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알게 되었네요. 진짜 배우가 되고자 했던 슌스케의 진심, 다리를 잃고도 굴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뭉클했네요.


"키쿠짱, 이제 글렀어······. 분하지만 여기까지야."

'그렇지 않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무릎 밑으로 양다리를 잃어야 하는 가부키 배우입니다.

그때 어째서인지 뇌리에 떠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선대 백호의 양손을 잡고 분장실에서 무대까지 안내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아아, 그래. 그건 선생님이 아들인 슌스케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신 나한테 보여주셨던 배우의 의지였구나,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슌도령. 선생님은 말이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셨어."

키쿠오는 그저 그렇게 말했습니다. (225p)


키쿠오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기에 두 사람은 경쟁자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친구였네요. 일본의 전통예술공연인 가부키를 잘 모르는 독자 입장에서도 진정한 예술가들의 면모는 경이로웠네요. 세상의 보물, 국보라고 불릴만 하네요.


무슨 이유든 광인이 행복하다는 헛소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타케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먼 옛날 몸싸움을 벌인 그 소년이 나타나서 ······.

"난 좀 더 할 수 있어. 난 좀 더 춤출 수 있어. 그러니까 좀 더 좋은 무대에, 훨씬 아름다운 세계에 설 수 있게 해줘!"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내는 것이었습니다.

광인의 눈에 보이는 것이 만약 완벽한 세계라고 한다면, 키쿠오는 이제야 그토록 원하던 세계에 서 있는 거겠지요. 연기만으로 살아온 남자가 결코 막이 내리지 않는 무대에 서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일반인의 가치관을 그에게 강요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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