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각들
연여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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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참 맛있다!

맛있는 초콜릿은 그냥 꿀꺽 삼키기 아까워서, 최대한 천천히 녹여 먹거든요.

그런 맛이네요, 이 소설은.

책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적어서 금세 읽겠구나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나도 모르게, 한참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가끔 글들이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어요. 그냥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이야기 안으로 쑤욱 들어가 버린 듯한 느낌, 그럴 때는 잠시 시공간을 유영하듯 빠져들게 되네요.

연여름 작가님의 《빛의 조각들》은 SF과학소설이에요. 행성 간 여행이 자유롭고, 인체에 생긴 결함이나 문제는 인공 강화하여 인핸서가 되는 미래 세계지만 주인공이 살고 있는 행성 연방에서는 화가를 비롯한 모든 예술가는 인핸서가 될 수 없어요. 연방 규정상 순수한 신체를 가진 오가닉에게서 탄생한 작품만 예술로 인정하고 있어요. 젊고 유망한 천재 화가 소카는 호흡기와 폐질환 때문에 불편하고 번거로운 산소 헬멧 없이는 오염된 바깥 세상을 나갈 수 없어요. 소카의 저택에 입주 청소부로 일하게 된 뤽셀레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눈을 다쳐서 흑백증 환자가 되었어요. 세상을 검거나 희거나 둘 중 하나로밖에 볼 수 없는 눈 때문에 이제껏 살던 세이네 행성을 떠나 이곳 발렌으로 왔고, 10개월 정도 일한 돈으로 인핸서가 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계획한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다는 건 지금이나 먼 미래도 똑같네요. 예민하고 무뚝뚝한 소카가 뤽셀레에게 처음 말을 건네면서 두 사람 간에는 은밀한 소통이 이어지는데, 조금은 편해진 뤽셀레가 무심코 소카의 약점을 건드리는 질문을 하면서 한순간 냉랭해지고 말았네요.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고통 없는 삶이 과연 우리에게 완전무결한 행복을 가져다 줄까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어요. 무엇을 선택하든,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니까요. 불완전함과 결핍은 결코 달가운 조건이 아니라서,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 완벽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먼 미래에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장 소중한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제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바라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법이므로. 그건 오가닉과 인핸서, 화가와 청소부, 세이네 사람과 발렌 사람 구분 없이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고통이었다.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감내해야 할 몫이 있을 뿐이다." (175-1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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