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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 23년간 법의 최전선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온 판사 출신 변호사의 기록
정재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사람을 척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자만하던 때가 있었더랬죠.
막상 더 넓은 곳으로 나와 보니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누구를 판단하기에 앞서 나 자신도 잘 몰랐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정신을 차렸네요. 너무 쉽게 믿었다가 크게 놀란 뒤로는 의심병이 생긴 것 같아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네요. 다행스러운 점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 바로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모든 믿음과 불신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네요.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는 판사 출신 변호사 정재민 작가님의 책이에요. 저자는 자신의 일터인 변호사 사무실, 경찰서, 구치소, 법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신뢰 또는 불신의 기류가 형성되는지, 그 결과 궁극적으로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시작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읽다 보니 법조계 관련자들만 알 수 있는 속사정부터 기가 막힌 사연들을 만나게 되네요.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되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생생한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불신의 양상으로 바라보니 새롭게 느껴지네요. 또한 재판을 받는 대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불공정한 사례들을 보니 매우 화가 나네요. 경찰의 부실 수사, 검사의 권한 남용, 이상한 판사들의 재판권 남용이 그저 과거의 얘기였다면 가볍게 넘겼을 테지만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재판 중계를 떠올려보니 심각한 상황이네요. 저자의 말처럼 사법부 독립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지, 개별 판사가 자의적인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방치해야 하는 게 아니므로 사법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네요. 법정은 믿음과 불신의 대립으로 떠받쳐진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돈 때문에 혹은 저마다의 이유로 새빨간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범죄자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늘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네요. 평생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 답은 찾은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서투름은 사람을 어떤 경우에 얼마나 믿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서투름이었다. 불행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타인을 믿지 않으면 불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늘 의심하고 경계하면 사랑을 주고받고 행복을 느낄 기회도 봉쇄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사는 듯 살기 위해서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지인들에게 사람을 얼마나 믿냐고 물으면 답이 천차만별이다. ··· 공무원으로 일할 때는 8, 9할을 믿었던 것 같은데(법정 밖 관계에서 말이다), 변호사가 되어 사기 사건들을 많이 맡고 나 자신도 수차 속다 보니 이제는 3할도 안 믿는 것 같다. ··· 판사로서 재판을 할 때는 재판받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저 마지막에 선택적으로 한쪽을 신뢰하거나 불신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니 믿음이 의뢰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9-1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