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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분
쑤퉁 지음, 전수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중국 작가 쑤퉁,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장이모우가 감독하고 공리가 출연한 영화 <홍등>이 쑤퉁의 작품<처첩성군>을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랬구나, 뭔가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영화에서 여인들의 삶은 처절하고 치열했다. 살아 남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한 붉은 빛의 등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여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영화는 그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저렇게 사는 건 너무 불행하다고, 불쌍하다고 말이다.
<홍분>은 쑤퉁의 작품 중 여성의 이야기 세 편을 담고 있다. 산다는 것이 고행처럼 느껴지는 삶이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어디쯤 있는 건지 보이질 않았다. 문득 내가 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따라 묵묵히 살아 가고 있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훔쳐 본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 사는 모습을 보며, “쯧쯧, 정말 안됐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라고 한다면 어떨까? “당신이 뭔데 내 삶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라고 화를 낼 것이다.
다행히 영화 속 여인들도, 책 속의 여인들도 나에게 화내지 않는다.
나의 세속적인 잣대들을 생각하며 혼자 부끄러웠다. 누구의 삶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왜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모두 작가 쑤퉁 때문이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다양한 여인들의 삶을 들려준다. 마치 이웃집 누군가의 삶을 잠시 훔쳐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그녀들은 평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극적이지도 않은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그래서 무심결에 그녀들의 삶을 가지고 왈가왈부했다. 그러다가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삶에 있어서 필연적이다. 시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작가 쑤퉁은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누구도 삶을 자기 뜻대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 편의 이야기를 보면서 연약하고 힘없는 그녀들이 오히려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련을 더 많이 겪는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보여주지 않은 그녀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쑤퉁이 들려준 이야기는 바람결에 울리는 종처럼 고요함 속에 울림이 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느껴지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